🗓️절기-록 | 게릴라들의 뒤얽힌 모순 속에서
📗초교 독후감 |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읽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 인디고 바칼로레아(IB) 시리즈를 만들며
한(漢)글자 아넥도트 | '非,常,口/非,常,門'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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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웬일인지 일 이야기로 가득한 제10통입니다. 이전 호의 <책 만들게 된 이야기>가 물꼬를 만들어준 걸까요? <양반의 초상> 초교 독후감을 공유한 이갑수 대표와 <인디고 바칼로레아> 시리즈를 기획한 메이우드 편집자가 출판 편집자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노동 철학을 인상 깊게 읽은 꿍꿍이의 답신은 덤! 거기다 세상 만물에서 한자를 보는 <한(漢)글자 아넥도트>에도 아라비아 숫자 '일(1)'이 등장한답니다. 구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생각해 보고 의견 넣기에 일에 대한 말씀 나눠 주시면 좋겠네요 😊
다음주에는 저희 궁리출판의 기대작 소식과 함께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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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록 (8) │ 게릴라들의 뒤얽힌 모순 속에서
꿍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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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은 편안함에 이르렀을까요? 저도 <아저씨>를 보았지만 그가 편안함에 이르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몇 화 보다 말고 중도 하차해 버렸거든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루저 삼 형제의 끈끈한 호모 소셜 우정이 부담스럽다거나 사내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선의로 미화된 유사 로맨스가 불편하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고(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드라마를 재밌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유가 연기하는 하청 노동자의 모멸과 이선균이 연기하는 대기업 부장의 곤궁함이 전제하는 노동의 지난함과 무력함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장면 말이지요.
늦은 밤, 이선균은 아이유와 술자리 직후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극중 직업을 살려 인생에 대해 설교합니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넌 내력이 강해 보여." 일리 있는 소리입니다. 예컨대 대립하는 두 항 간의 전투. 노동자들은 내력이 강해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 시대가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싸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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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의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에서 노동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노동 철학은 유물론적인 게 아닙니다. 노동 철학은 인간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하나의 행위 주변에 배치합니다. 물질을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이 행위는 적대적인 항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적대적인 항이란 물론 물질이지요. 인간은 그 적대적인 항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립하는 것입니다."
-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 중
여기서 베유는 노동이 유물론에 반대된다는 간단하면서 중요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에 있어 인간은 유물론에 대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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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과 진화론을 적극 받아들인 마르크스는 사회가 언젠가, 그리고 곧 노동자들의 세상이 될 거라며 확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직 공산당원이었던 베유는 사회를 물질의 단위로 상정한 연구 결과는 힘과 선의 복합체인 사람의 모순을 "허구적인 통일성"으로 덮어버렸다고 반박합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19세기에 빈번했던 메시아적 사고에 빠져 성급하게 굴었고, 여느 사람이 그렇듯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가장 자명한 것으로 여겼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지요. 하지만 모순에 빠지는 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하며, 모순은 항상 오류의 지표를 나타내지만은 않고 때때로 진실의 신호임을 역설하기도 합니다.
진실의 신호, 이 모순의 정당한 용법까지 가면 말이 조금 어려워지는데요. 마무리하자면 핵심적인 모순 "선과 필연성의 모순/정의와 힘의 모순"을 "두 다리를 가진 도구처럼 사용해서" 이때까지 다루지 못했던 너머의 영역에 닿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핵심 모순들은 "대립하는 두 진영 사이의 전투라기보다, 게릴라들의 아주 복잡한 뒤얽힘 같은 것"에 있습니다.
이는 대표님이 부정문을 언급하며 말씀하신 종점에 도착한 버스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종점에서 끝나버리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것이고, 종점을 지나 오솔길과 산꼭대기로 가는 과정을 예찬하셨지요. 도식화하면 긍정과 부정/멈춤과 나아감. 백번 동의하지만 오늘 저는 버스 종점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칠칠맞지 못하게도 버스에 휴대폰을 두고 내려버렸거든요. 안일한 희망을 품고 버스 꽁무니를 따라 달려보았으나 더운 날씨에 땀만 잔뜩 흘렸습니다. 그래도 종점에서 분실물을 보관해 준 덕에 잃어버린 휴대폰을 되찾아 다행이었어요. 잃기 전에도 중요한 물건이었지만 다시 찾은 휴대폰은 더없이 소중하고 기특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변화 무쌍한 2200번의 배차와 대기시간에 따라 버스 통근자인 저의 기대도 때때로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으로 변하곤 하니 모순은 진정 도처에 즐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모순의 정당한 용법-결론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출근을 잘 하자, 입니다.
어느덧 비 그칠 때면 매미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곤 하네요. 본격 무더위 시작이라는 소서입니다. 염치 불고 하고 절기 이야기는 대표님께 넘기겠습니다. 수해와 열해 소식이 부쩍 늘었어요. 틈틈히 몸 식히시고 수분 보충 잘하시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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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 독후감 |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양반의 초상』 | 하영휘 지음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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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 그 고단함을 누가 알리오. 그 사람의 사정이야 그 사람만이 안다. 오죽했으면 어느 가수는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을 노래했을까. 논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다)‘과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은 뒤에라야 그만 둘 수 있다)’를 말했을까. 이들은 그저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건 아니다. 그 구체(具體)를 살피면 결국 먹고사는 문제로 그 바탕을 이루게 된다. 몇 해 전, 어느 방송 다큐에서 실감나게 다루었듯 그것은 좀 치졸하긴 해도 결국 삼시세끼의 문제가 아닐까. 아, 입이 없는 것들(이성복)이 아니라 입이 달려 있어 외부에서 먹이를 조달해야 하는 것들의 비루와 비애.
이렇고 저렇게 대충 수습하면 이제 나의 일생 마무리할 수 있겠구나 싶을 때, 위기는 온다. 그곳은 자신도 모르게 올라탄 호랑이 잔등 곳이라서 잠시라도 고요할 날이 없는 곳이다. 바닥은 까불대고, 공중에는 비바람 몰아치고. 그것은 돌림병처럼 언제나 찾아온다. 너무 늦게 알아차렸구나. 진즉에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막연한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일로 던져두었던 문제. 아무 일 없을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이런 시 한 편에 위안이나 받으면서.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그걸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내일을 믿다가/이십 년!//배부른 내가/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 천상병, 「편지」
“초서 강의 좀 안 들을래?” 한시에 능통한 선배의 은근한 권유. 인사동의 고미술상 전시실 한켠의 강의실, 말하자면 길거리 인문학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퇴계의 편지를 읽는 시간이었다. 한문에 대한 선망만 있었지, 배경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저 한문이 좋다는 얄팍한 생각만으로 용기엤게 강의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늦게 성균관대학교로 부임하면서 강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간혹 안부만 여쭈면서 위성처럼 선생님 주위를 배회하기만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되었던 어느 날, 그 선배님이 상을 당하시어 조문을 갔다가 모처럼 선생님과 재회했다. 선생님은 볼펜도 붓처럼 수직으로 잡고 쓴다. 부의록을 작성하고 둘이 앉아 또 많은 것을 배운다. 한문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실은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 대표, 한문으로 일기를 써보세요!”
그 독대에서 나온 것이지는 확실치 않으나 선생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당시 절판 상태였던 <양반의 사생활>을 궁리출판에서 <양반의 초상>으로 제목을 바꾸고 ,대폭 수정하고 보완해서 다시 내기로 하고, 원고를 받고, 초교를 담당 편집자한테 달라고 해서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이 팍팍한 시대와 결탁한 이 마음을 어딘가 좀 적어두고 싶었다.
이미 지난, 옛날의 그 양반이, 아무리 시대를 격해도,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고, 그 어느 시대건 살림살이의 세목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시절의 양반 조병덕(趙秉悳. 1800-1870). 웃대에서는 벼슬길에 나서 집안이 번성했으나 이후 3대가 급제에 실패했다. 양반도 항산이 없으면 어쩔 수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못하는 일이 없다. 요새말로 ‘니야까’라도 끌어야 하는 곤궁함으로 내몰린 것이다. 조병덕은 궁핍한 살림을 타개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나 보령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소한의 양반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남긴 1700통의 편지. 숙독하고 원고를 덮는데 오늘의 나하고 고스란히 포개지는 대목이 많았다. 그 끝에 떠오르는 시 한 편.
초등학교 3학년까지 뒹군 그 고향에서 함께 자란 동갑의 사촌형이 있다. 함께 서울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도 예전의 우애를 그대로 지키며 살았다. 어느 날의 밤. 형의 아들이 장가가는 하루 전날. 이제까지 우리는 어른끼리는 물론 아이들하고 정말 자주 만났다. 내일 장가가는 녀석, 어느 때부턴가 소식만 듣는 사이가 되었다. 멀리 호주로 워킹홀리데이까지 갔다왔다고도 했다. 우리 시대 빡빡한 청춘들의 통과의례를 녀석도 톡톡히 겪는 중이런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일, 그 북적거리는 예식장, 나도 여러 하객 중의 한 사람, 무척이나 바쁠 신랑. 그 식장에서 불쑥 봉투 하나 내밀고, 아, 오랫만이네, 결혼 축하해, 하면서 손 한번 붙잡고 말기에는 좀 낯이 간지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얼굴을 맞대기도 하고, 저는 아이로 나는 어른으로, 장난도 치고, 무람없이 통과해낸 시절이 있는데....그래도 내가 신랑보다 먼저 살고, 오래 살고,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이젠 신랑의 전화번호도 없어서 형께 물어 전화를 했다. 참으로 실로 오랫만의 통화. 우선 내가 모처럼의, 옛날에는 익숙했던 농담으로, 별명도 부르며 목소리를 건넸더니 새신랑이 하는 말, “아이고, 삼촌, 저도 소식 드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하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만....ㅎㅎㅎ”
넉살 좋고, 웃기 잘 하던, 봄날의 노루귀처럼 보리밭의 보리처럼, 청랑하던 녀석의 목소리에,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릴 땐 마음이 좀.... 내일하는 결혼식의 설레임에 한편으로 고단함이 배인 녀석의 말. 얼마 전에는 작고한 미국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1947-2024)에 관한 책을 읽다가 하필이면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1960 년대 후반 칼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파리로 이주 하기 전 몇 개월 동안 유류 수송선에서 일 하기도 했다. 파리로 이주한 뒤 먹고 살기 위해 번역가가 되었다.“ 말하자면 폴 오스터도 절실한 생존을 위한 삼시세끼를 위해서 니야까를 끌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양반의 초상> 초교를 덮을 때 떠오른 시는 아래에 소개하는 서정주의 <뻔디기>다. 니야까도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에 <행진곡>과 함께 마음에 팍 꽂혔던 시다. 하영휘 선생님의 <양반의 초상>은 기울어가는 조선 후기의 양반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시대가 감당해야 하는 먹고사는 문제와 그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겪어내야 하는 오늘날 보통사람들의 고민과도 고스란히 겹치는 대목이다. 곧 출간되어 독자들께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몹시 궁금하다.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야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끔씩 그 자리에 붙이고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뻐억, 뻐억, 뻔디기, 한 봉지에 십원, 십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 그것이나 겨우 끌어 달라는 것이야. 그것도 우리한테뿐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6학년짜리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이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제에길!
*초교 독후감.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갖는 특권 중의 하나는 완성되기 전의 원고를 미리 읽는다는 것. 초교 독후감이라 이름하고, 편집과정 중에 원고를 읽고 그 독후감을 가끔 올려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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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 인디고 바칼로레아(IB) 시리즈를 만들며
🌳메이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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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 문을 연다는 아주 짧은 기사를 본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오랜 시간 책을 만들어 오면서, 보자마자 직관이 움직이며 ‘그래, 이거야!’ 하는 느낌을 받는 아이템들이 생각보다 아주 드문 편인데, 인디고 서원과의 만남이 제겐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가장 먼저 달려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의기투합하여 오랜 시간 20여 종이 넘는 책들을 함께 출간해왔습니다.
인디고 서원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 책을 사서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니 때로는 책에 질리기도 하고 물리기도 하는데, 이곳을 다녀오면 책을 그 자체로 보게 되면서 뭔가 환기가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책과 독서의 근원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랄까요!
그간 인디고 서원의 청소년들과 함께 크고 작은 시리즈들을 만들어왔는데, 작년부터는 <인디고 바칼로레아(IB)> 시리즈를 펴내기 시작했습니다.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시리즈로, 책을 읽으며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소통과 공감 등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역량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어요. 1권의 주제는 ‘삶을 위한 질문과 토론’, 2권은 ‘읽다, 새로운 세계를 열다’, 곧 출간 준비중인 3권은 ‘너의 이야기를 발명하라’입니다.
인디고 서원을 만든 아람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책에서 단 한 문장을 읽었더라도 내 마음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다면, 그럼 그 책은 자신의 소명을 잘 해낸 것”이라고.
내년에는 인디고 서원의 문을 연 지 어느새 20주년이 되네요. 처음 만났을 때 청소년이던 친구들이 지금은 서원의 든든한 일꾼으로 지내는 것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새삼 실감합니다. 조만간 인디고 서원을 방문하게 되면, 그러한 흐름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이 무엇이었더라, 한번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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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 非,常,口/非,常,門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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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도 아니다. 이 세상의 물질이 만드는 물체, 그 물체들이 혼자 혹은 여럿이 모여 만드는 개념, 그들 사이 빈틈이 품고 있는 말없는 말들까지도 포착하여 기가 막힌 글자를 만들어낸다. 추상이나 구상은 한자를 주문하는 주요 고객이다. 아라비아 숫자 1을 뜻하는 ‘하나’를 그냥 한 획으로 죽 긋고 뉘어 호탕하게 표시하는 것. 여기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원리가 무척 깊숙하게 들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발 딛고 살아가는 바탕인 이 광활한 대지를 표상한다. 그 아래위로 간단한 구조물을 설치하여 고마운 글자인 상(上)과 하(下)를 만드는 솜씨. 이러니 한 글자만으로 귀신도 울고 갈 그런 경지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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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산행을 종종 간다. 어느 날, 시작할 때부터 날씨가 좀 찌푸렸다. 다행히 고된 산행을 마칠 무렵에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줄근히 젖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관광버스를 탔는데, 맨 좌석의 유리창에 이런 한자가 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든 그 세 글자가 정확하게 각각 좌우대칭이 아닌가.
非常口. 아닐 비, 항상 상, 입 구.
이런 풀이가 가능하겠다. ‘아니다’는 실은 ‘이다’와 아주 잘 통한다. 둘 사이에는 우리도 모르는 고샅길이라도 있어 왕래가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가령 점방에 들어가서 ‘이게 볼펜입니까’이거나 ‘이게 볼펜이 아닙니까’라고 물어도 주인은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항상 常’도 그렇다. 이건 말뜻 그대로 늘, 여전하게, 여일하게, 똑같이 라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저 말에는 아예 전후좌우로 통하는 길이 글자 안에 대칭적으로 들어 있는 것. ‘입 ㅁ’는 조금 특별하다. 인체는 구규(九竅)라 해서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몸은 외부와 물질을 주고받으며 신진대사를 영위해 나간다. 하부에 있는 것들은 논외로 하고, 상부 그러니깐 얼굴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본다. 눈, 코, 귀, 그리고 입. 모두 쌍으로 있는데, 입만 하나다. 과연 그럴까.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두 작용이 이루어지는 곳. |
그러니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함이 옳다. 눈(眼), 코(鼻), 귀(耳)보다 엄청 간단하지만 이 단순한 속의 간결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입 口’는 좌우는 물론 상하까지도 사통팔달하는 대칭의 구조인 것이다.
주말마다 산으로 가는 건, 궁극적으로 나의 몸을 분해하여, 먼지로 만들어서라도 저 하늘의 비상구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은밀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산으로 가는 건 세상의 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늘 실패다. 그렇게 좌절한 뒤 쫓기듯 돌아와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데, 유리창 바깥의 빗방울은 저 아득히 먼 곳에서 와서 여기로 들어오려고 몸을 짓이기는 풍경이라니…그런 묘한 세상의 좌우대칭을 저 비상구, 세 글자에서 보았던 것.
그제는 모처럼 서울로 외출해서 합정역으로 갔다. 지하철이야 언제나 늦게 오는 법, 띠리링띠리링... 신호를 받으며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안내문이 있다. ‘EMERGENCY EXIT DOOR 非常門 비상문 비상시 사용하는 문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꽉 막힌 곳이 아니다. 벽돌처럼 밤이 깜깜해도 곯아 떨어져 한숨 자고 나면 새벽이 와서 딱딱한 공중을 풀어 헤친다. 지푸라기 같은 햇살이 쏱아져 다시 낮이 되듯 大小도, 長短도, 我他도, 生死도 결국은 다 좌우대칭으로 뻥 뚫린 세계가 아닐까.
이윽고 신호음을 덮으며 요란한 굉음의 전동차가 실제로 도착했다. 안전선 바깥으로, 비상문의 밖으로, 전동차 안으로 나는 내 몸을 휙,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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