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책 추천 | 『달팽이 안단테』
🗓️절기-록 | 날씨와 의상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 역자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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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긴 연휴를 보내고 오랜만에 돌아온 궁리함입니다. 가을이 찾아왔다고 인사드린 저번 레터가 무색해져버릴 만큼 더운 추석에 다들 무탈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번엔 긴 소매를 꺼내 입는 계절이 정말로 다가왔습니다. 독서의 계절에 맞춰 편집자들의 책 추천 릴레이를 준비해 보았어요. 각각 편집한 책에 맞춰 추천드릴 예정이니 어떤 책의 편집자가 무슨 책을 추천하는지 재밌게 보아주세요!
🍂 이젠 정말 가을
꼭 절기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계절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옵니다. 힘든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가을은 출판계에도 설레는 계절인데요. 저도 부푼 마음을 안고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긴 독서 리스트를 작성했어요. '의견 넣기'에 구독자분들의 독서 계획도 알려주시면 기쁘겠네요.
아직 마음을 못 정하셨다면 비책 편집자의 <편집자의 책 추천> 코너를 참고해 주세요. 달팽이의 속도와 움직임을 상상하며 읽어보길 추천드립니다. 달팽이의 고요한 동작이 마음속에 차분한 잔상을 남기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가을엔 여러분도 독서로 여유로운 속도를 만끽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이어지는 <절기-록>에선 날씨와 옷차림으로 답신을 지어봤습니다. 한자 '놈 者’ 에세이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을 번역한 조재호 역자 인터뷰까지, 이번 제14통도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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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책 추천 │ 『달팽이 안단테』
🏺비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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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달팽이를 두 해 동안 키웠다. 달팽이는 날씨가 너무 덥거나 건조하거나 먹을 것이 맞지 않으면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달팽이집에 몸을 집어넣고, 집 입구를 얇은 막으로 막은 다음 긴 잠을 청하는 것이다. 이 잠은 몇 주, 길게는 몇 년간 이어지기도 한단다. 처음 달팽이들이 문을 걸어 닫고 집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동면 중인 달팽이를 일부러 깨우려고 미지근한 물로 달팽이를 목욕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달팽이는 적당한 때가 되면 스스로 잠에서 깨어난다. 달팽이의 동면 자세는 한결같다. 집의 입구가 위쪽, 바로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다. 올여름 새로 부화한 어린 달팽이들을 개울이 있는 아담한 숲에 풀어주었다. 이들 중 살아남은 달팽이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흙속에서 잠을 자다가 하늘에서 반가운 비가 내릴 때면, 몸을 적시는 비의 감촉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고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러 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상권 작가의 『위로하는 애벌레』를 만들던 중 우연히 달팽이를 만났다. 이 책을 마감하고 『달팽이 안단테』를 추천받아 읽었다. 투병생활 중에 달팽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 저자가 이 작은 존재에게 감사를 전하는 고백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그렇다. 아마 이다음에 읽어도 비슷할 것이다. 달팽이의 점성과 속도대로 끈끈하게, 천천히 이 책을 읽을 것이다.
_『위로하는 애벌레』 담당 편집자 비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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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와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오랜만의 답신입니다. 저도 그간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선선한 지방을 택했더니 그만 감기에 중이염까지 걸리고 말았습니다. 대표님처럼 건강하게 이곳저곳을 누비는 일이 새삼 대단한 일이라 느껴지네요. 몸이 성치 않아 아쉬움이 많았지만, 날씨를 미리 따라잡으려다 겪은 고생으로 몸과 마음 상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 어쩐지 각별한 여행으로 남았습니다.
기나긴 여름을 보내다보니 절기가 어느새 한로(寒露) 앞인 걸 간과했나 봐요.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남쪽 나라로 간다는데, 옷차림을 좀 더 두껍게 챙길 걸 그랬습니다. 토머스 칼라일은 『의상철학』에서 제아무리 왕이라 해도 맞는 의상을 갖추지 못하면 위엄을 갖추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아무래도 제겐 여행자로서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자로서뿐 아니라 조바심과 의욕이 앞서, 마음만 앞질러 흐리멍덩하게 마무리한 일이 많습니다. 칼라일의 말처럼 의상은 위엄을 갖추는 데 큰 몫을 하지만 의상을 갖추었다 해도 위엄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도 별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요. 여러모로 스스로 찔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좋아하는 글귀로 이루어진 삶을 오랜 시간 원해왔던 것 같아요. 이야길 꺼내고 보니 문장으로 삶을 따라잡으려고 성급하게 굴었던 기억도 문득 스쳐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마음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이상은 너 자신 안에 있고, 장애도 너 자신 안에 있다.” 칼라일은 이렇게 일갈하곤 장애는 각자의 조건일 뿐이며 이상을 형상화할 재료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네요. 아직은 멀고 지난한 길처럼 보이지만 조금은 힘이 되는 말입니다. 삶은 가끔 너무도 빨라서 이렇게나마 뒤쫓지 않으면 금방 놓쳐버릴 것 같아요.
여름을 에일리언에 비유하셨듯이 여행 몸살도 곤충에 물렸다고 생각하며 지나 가보려 합니다. 칼라일과 대표님의 말을 여러 번 겹쳐 읽게 되네요. “냉정한 현실”과 “네가 구하는 것은 현실에 있지, 다른 아무 데도 없다”는 말을 자주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기존 형식을 걸쳐 입기보다 조건과 이상에 맞는 ‘새로운 옷’을 지어 입는 것. 쌀쌀해진 날씨에 맞춰 깊이 고민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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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 '놈 者’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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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말은 몸이 직립하면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 직립이란 여느 동물처럼 네 발로 기다가 두 손으로 공중을 만지고 두 발로 걷는 것. 신체가 곧게 펴지면서 목구멍이 자연스레 열리고 풍부한 소리가 생산되었다. 존재의 시원인 저 깊숙한 동굴에서 언어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 변화가 초래한 건 엄청난 수준이다.
언어를 구사하게 된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게 지위는 이미 익히 아는 바다. 지구의 전 영역을 사실상 확고하게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는 조물주의 영역인 생명까지 넘보려고 한다. 그러나 참 모를 게 있으니 그러면서 외려 모르는 영역도 그만큼 늘어난다. 인간은 눈으로 보기 때문에 겉만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일부만 본다. 아무리 최신의 고급 광학기기를 동원한다 해도 부피를 가진 한 그 대상의 전체를 동시에 볼 수가 없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본질에 닿을 수 없다. 그 말이 그것의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기에 포장, 광고, 피부, 껍질만 보이는 현실. 차라리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게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캄캄함이 보인다. 다행이다, 하나는 확실하다. 적어도 이 어둠 속에 겉은 안 보인다는 것. 침묵도 이러한 부정(否定)의 한 양태일 것이다.
이런 총중에 그냥 나만의 개똥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어떤 언어든 자음과 모음의 수가 대략 이빨의 그것과 비슷하기에, 입 안의 혀가 맛을 구별하는 부위를 따로따로 가지듯, 말의 공장인 입속에 말발굽처럼 도열한 치열도 각각 발음을 담당하는 이빨이 제각각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역은 송곳니, 미음은 어금니, 리을은 앞니. 물론 이것은 언어의 탄생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인류학의 성과와는 달리 아무런 근거 없는 나의 치졸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이 부황한 시대의 속물로서, 달콤한 언사와 족보 없는 음식으로 점철된 내 입안의 발음으로 어느 시대까지의 우리 선조들과 통역없이 말이 통할까, 궁금한 적이 있다. 듣기로 백제어, 신라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문자의 세계를 다루는 학문에 그칠 뿐이다. 몇 권의 국어학 책을 뒤져보았으나 나의 궁금증은 그 어디에서도 풀어지질 않았다. |
1443년. 한글이 창제되고, 한자는 절멸된 게 아니다. 오히려 한글도 한자도 더 두툼한 뜻을 얻게 되었다. 이제 하나하나의 한자는 우리말로 하나하나의 훈(訓)을 달게 되었다. 하늘 천(=天), 땅 지(=地), 나라 국(=國)과 같은 방식. 뜻은 우리 고유의 한글 표기이지만 훈을 보면 대개 중국어 현지 발음을 최대한 살린 것 같다. <東國正韻>의 방식대로 하다가 현실에 맞지 않아 폐기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다소 불확실한 내 자투리 상식의 전부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제 모처럼의 꽃산행을 합천 황매산으로 갔다. 이 즈음의 우리 산하에 구절초, 쑥부쟁이 등등의 가을 들국화가 없다면 어찌할 뻔했을꼬. 우리가 목표로 한 건 ‘빗살서덜취’라는 귀한 야생화. 그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을 찾아 계단을 오르다가 마음이 좀 간지러운 안내판을 만났다. “행복은 자신의 속도로 걷는 것.” 이것을 한자로 변환하면 다음과 같다. “幸福은 自身의 速度로 걷는 것”
이 문장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것”이다. ‘것’에 해당하는 한자는 “者”이다. 흔히 ‘놈 者’로 훈을 다는 한자이다. 말이란, 할 때도 마음의 태도를 따라 나오지만 들을 때 사투리로 듣는가 보다. 어느 공부 모임에서 어느 분이 ‘겉 자’로 훈을 다는 게 아닌가. 겉 자, 겉 자. 겉 자. 나는 그 말을 겉으로 들었는데 다시 알고 보니, ‘겉’이 아니라 ‘것’이었다.
아하, 이제는 알겠다. 자(者)는 대표적으로 ‘놈’을 뜻하지만 재귀적 대명사로서 영어로 치면 ‘thing’에 해당한다. 인간살이의 가장 기본을 두루 포괄하는 글자. 사람과 사물은 물론 그것들이 뛰노는 장소까지를 일컫는 “놈, 것, 곳”
1443년에서 580여 년 지난 2024년. ‘것’을 ‘겉’으로 짐짓 잘못 들은 나는 내 귀를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다. 문(門) 따위는 애시당초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귀를 나는 전적으로 믿는다. 사투리로 들은 소리를 한 단계 생각으로 옮겨도 그렇다. ‘겉 者’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우리는 일생 내내 ‘것’의 ‘겉’만 보는 ‘놈’들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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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 역자 인터뷰
Q1.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의 옮긴이로 궁리 독자분들께 처음 인사를 전하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어떤 공부를 했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1. 안녕하세요. 조재호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뉴욕 주립대 Stony Brook University에서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투자은행의 외환 옵션 부서에서 수학적 모델링 관련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가 박사학위 과정 중에 공부했던 일부 내용이,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외환 가격에 대한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현재도 일하면서 수학을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Q2. 이 책은 래리 고닉의 이런 헌사로 시작합니다. “유클리드와 나의 모든 수학 선생님에게”. 역자 선생님께도 기억에 남는 수학 선생님이 계시겠지요? 어떤 수학 선생님이 오래 기억이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A2. 모든 선생님께 감사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과를 목표로 만들어주신 두 수학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노병태 선생님입니다. 제가 수학을 재미있어하는 걸 보시고 여러 가지 관련 프로그램도 많이 추천해주시고, 대입 추천서도 써주신 감사한 분이에요. 덕분에 고등학교 때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수학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었고, 거기서 많은 재미를 느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아직도 현역에 계신, 제가 고등학교 3년간 현장강의로 수업을 들었던 한석원 선생님입니다. 생각하는 법과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라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여담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수학과,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는 지원하지 말라”는 농담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수학과를 가고, 같은 수업을 듣던 동창 두 명은 각각 서울대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를 갔네요.
Q3. 고등학생 시절 수학과 진학을 꿈꾸셨다고 하셨지요. 수학의 어떤 면이 재미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3. 제가 (지금도)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암기를 많이 해야 하는 과목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잊어버리기 쉬운 단편적인 사실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과목들보다는 중심의 이론으로부터 다른 사실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과목들에 좀 더 끌렸던 것 같네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로부터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들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은 해당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찍어야 하는데, 수학이나 물리 같은 과목에서는 기존에 알던 내용을 통해 유추도 해볼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좀 더 공평한 과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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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출판 kungree@kungree.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25-12 (10881) 031-955-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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