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 한국사 | 지금껏 본 적 없는 연표
📑편집 후기 | 『철학자의 공책 空冊』
☯️공, 책에 대한 생각 | 최진석의 『철학자의 공책』에 부쳐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 인디스페이스, 한국영화의 현주소
한(漢)글자 아넥도트 | '나무 木'에 대하여
🗓️절기-록 | 교육과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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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구독자 여러분은 우리나라, '한국'이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시나요? 교육과정 중에 배웠던 '한국'을 돌이켜보면 날씨부터 정치, 기술, 문화까지 많은 것들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과거의 모습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건 아닐 거예요. 과거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되었을 뿐, 현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실재합니다. 앞으로 궁리함에서 소개할 프로젝트가 바로 이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구상 및 기획 5년, 집필에만 3년이 넘게 걸린 대작, 『횡단, 한국사』를 소개합니다.
✏️이 시대의 한국사
바야흐로 고이 숨겨져 있던 고문헌이 몇 만점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사학자들의 일거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합니다. 비단 해석할 사료가 생기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아도 역사는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던져주곤 해요. 이번 제18통에서 소개드릴 『횡단, 한국사』가 구독자분들에게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담당 편집자인 더기의 소글로 기대감을, K-콘텐츠의 대표주자인 '한국영화'를 곁들인 꿍꿍이의 인디스페이스 방문기로 운을 떼려고 해요.
이어 편집자 비책과 이갑수 대표가 내주에 출간될 『철학자의 공책』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각자의 호흡으로, 색다른 각도로 펼쳐지는 "공책 空冊"을 기대해 주세요. '나무 木'자와 함께한 여행기 <한글자 아넥도트> 다음으로는 정해진 절기를 넘어 스스로 만드는 절기, <절기-록>이 준비되어 있어요. 그럼 모두 감기 조심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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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 한국사 │
어느 사전 덕후가 한국사에 몰입하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연표가 탄생합니다
🦆더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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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의 구간 중에는 ‘빅북’이 여러 권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차기 애니메이션을 준비하는 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심해』가 있고요. 또 하나로 『세계만물그림사전』이 있습니다. 2007년 나온 이 책은 32,000여 개의 단어와 6,000컷의 이미지로 나타낸 전 세계 사물에 정확한 이름을 붙인 것인데요. 이 방대한 작업을 한 장석봉 작가는 사전과 공구서를 사랑하는 지식 큐레이터입니다.
이런 그가 17년 만에 다시 빅북을 선보입니다. 이번엔 역사책입니다. 구상 및 기획 5년, 집필에만 3년이 넘게 걸린 한국사 연표, 바로 『횡단, 한국사』입니다. 190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및 세계 근현대사 121년이 담겨 있어요.
『횡단, 한국사』 원고를 만나기 전 저에게 연표는 학창 시절에는 시험에서, 성인이 되고 나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며 본 게 전부였습니다. 핵심 사건, 인물, 장소, 각종 숫자가 전략적으로 나열된 표를 시험 몇 주 전부터 달달 읽었지요. 이렇듯 암기에는 도움이 됐지만 다소 건조하고 딱딱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이랬던 연표가 사방팔방 뛰어오르는 연어떼처럼 살아 있을 줄은, 이 횡단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책과 뉴스에서 숱하게 봐온 사건과 인물은 물론, 아마 모두의 기억에 없을 이름 모를 민초들의 생활상이나 소소한 한반도의 풍경도 만날 수 있어요. 한국의 문화, 예술, 스포츠의 변천사도요. 500여 컷의 이미지에 13개의 인포그래픽까지, 방대한 시각자료를 더해 거시사와 미시사를 절묘하게 버무렸습니다. 장석봉 작가는 이 횡단을 위해 400여 권의 서적과 자료를 살피는 집념을 보였고요. 이 여정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으니, 빠르면 새해 첫 달에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과 성원과 응원을 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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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 『철학자의 공책 空冊』
🏺비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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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아 펴낸 『최진석의 말 2024 일력』을 초등학생 어린이와 함께 사는 오빠네 가족에게 선물했다. 일력을 무심하게 툭 주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주말, 집에 놀러 온 조카가 일어나자마자 더듬더듬 글을 읽어나가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다. 다름 아닌 일력의 한 구절이었다. 조카가 읊는 글귀가 퍽 듣기 좋고 강렬했다. 초등학생 1학년, 아는 글자가 하나 둘 늘어나는 시기. 눈떠서 일력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게 조카의 아침 루틴이었다. 가끔은 공책에 연필로 꾹꾹 옮겨 적는다 했다. ‘지금 읽은 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말하는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글을 대하는 아이의 느린 호흡이 좋았다.
『철학자의 공책 空冊』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보고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기획된 책이다. 책의 한 면은 채워져 있고, 한 면은 비어 있다. 글의 길이도 짧다. 짧아서 한 단어 한 단어 주의를 기울여 보게 된다. 소리로 글을 만나도 되고, 손의 근육을 써서 글을 힘껏 만나보아도 좋다. 글의 배치 순서에 따라 읽어나가도 되고, 그날그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골라 써도 된다. 필사를 하다가 책의 말길에서 벗어나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독자들도 그려본다. 책을 읽는 정해진 방식은 없다.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철학자의 공책 空冊』을 완성해나가셨으면 좋겠다. 공책, 이라는 제목처럼.
책에 실린 300편의 글귀 중 이 책의 영감(靈感)이 되어준 존재,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63
나는 언제나 대여섯 살 난 어린애들 앞에서도 조심한다.
아이들도 다 그들 방식대로 알고 행동한다.
131
아이들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미래는 아직 열리지 않은 곳,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다.
생의 발자국은 숙명적으로 아직 열리지 않은 곳으로
부단히 건너가야 한다.
-『철학자의 공책 空冊』(최진석 지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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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책에 대한 생각 | 최진석의 『철학자의 공책』에 부쳐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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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말의 공원, 나들이 나온 일가족. 아이들은 맘껏 뛰놀고 집에서 마련해 온 음식을 나눠 먹고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한 가장은 슬쩍 물러나 돗자리에 누워 독서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건 어느 펼친 시집. 책은 그야말로 시옷처럼, ‘사람 人’의 모습을 연출한다. 여기 사람이 시집을 읽다가 2층을 이루었네. 책에는 골짜기가 많다네. 페이지마다 그 어디 심연에서 굴러떨어지다 잠깐 멈춘 돌멩이처럼 활자들도 잠시 쉬고 있네.
2. 책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둘러싼 사물 중에서 책은 그 지위가 사뭇 독특하다. 책은 굳이 ‘冊’으로 한자로 써야 제격이라고 말한 분이 있다. 한국 단편소설의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문장강화>로 글쓰기의 한 전범을 제시한 상허 이태준(1904-1978?)이다. 한자에서 사람을 뜻하는 ‘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 의지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 풀이한다. ‘冊’은 낱낱의 종이를 가지런히 꿰맨 두툼한 책의 모양을 본뜨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어깨동무하고 견결하게 걷는 동작을 절묘하게 포착하지 않았는가.
3. 궁리에서 최근 冊 하나를 야심차게 출간했다. 제목은 <철학자의 공책 空冊>. 노장철학의 대가, 인문학의 전도사, 시인보다 더 시인 같은 철학자, 최진석의 필사책이다.
4. 저자는 일상에 밀착된 언어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이야기한다. 접신하듯 우리 시대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그의 강의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길가에 흔히 뒹구는 돌멩이에서 시작하더니 어느새 밤하늘의 별을 독자의 가슴에 따다 준다.
5. 내가 아는 한 그이만큼 시를 많이 읽고/외우고, 시를 철학에 끌어들이고, 철학을 시처럼 풀어내는 이도 드물다. <...공책>의 편집이 다 끝나고 머리에 얹을 저자의 말을 청했더니 ‘말’이 아니라 ‘시’를 득달같이 보내주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6. “글을 기다리는 종이는/온몸을 펴놓은 피부다//쓰기는 피부가 된 자신을 긁는 일이다/자신에게 고랑을 내는 일이다/고랑을 내야 땅도 비로소 자기가 땅으로 사는지 알듯이/피부를 긁어야 자기에게로 가는 초인종이 울린다/자기가 어떻게 있는지/자기가 하늘을 향해 언제 팔을 벌려야 하는지/피부를 긁어 고랑을 내야 아는 것이다//쓰기만큼 깊은 일이 또 있을까?//자신을 궁금해하는 일/우주의 수평선에 손을 뻗어보는 일/행성의 궤도를 어루만지는 일/그녀가 서 있던 버스 정류장의 냄새를 혼자 맡아보는 일/머리의 무게를 그대로 다 받아서/고개를 깊이 숙이고/자신을 긁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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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이란 무엇인가. “공(空). 명사. 실체가 없고 자성(自性)이 없음을 이르는 말.” 불교에서 연원하여 무수한 불교학자, 철학자를 괴롭혀 온 공의 개념을 알기란 몹시 힘들다. 깨달았다고 그걸 바깥으로 알려주기란 더욱 힘든 일. 오죽했으면 부처님도 깨닫고 난 뒤, 그 깨달음을 남에게 알려줄까 말까 몹시 고민했다고도 하지 않는가. 설명할수록 설명하는 말들이 더 어려워지는 사태를 초래한다. 당장 저 국어사전의 풀이에서 실체란? 자성이란? 없음이란?
8. 전공자들을 두통에 잠기게 하는 공을 일반인들은 공처럼 아무렇치 않게 잘 가지고 논다. 태어나자마자 마음대로 공기(空氣)를 마시며, 방황하고 서성거린 끝에 공상(空想)에 젖다가, 택시도 공차(空車)를 타고, 빨래를 공중(空中)에 널고, 어려울 땐 공허(空虛)에 기대고, 발바닥이 부르터도록 공간(空間)을 돌아다니다가 이윽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하신다. 옛날에는 더러 이런 말도 자주 했다. 돌아오는 반공일(半空日)엔 밀린 일을 해치우자!
9. 空이란 무엇인가? ‘하늘/비다/허공/헛되다’는 뜻의 꾸러미인가? 空=穴+工. 그렇다면 구멍(穴)을 만드는 공장(工場)인가. 없음을 뜻하는 無와는 또 구별되는 말.
10. 無가 공간에 대해 없는 것이라면, 空이란 시간에 대해 없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물은 어제나 내일은 물론 오늘에 대(對)해서 없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칼날 같은 지금 이 날카로운 순간에만 겨우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11. 존재함의 비밀을 한 자락 보여주는 공은 심오하다. 그 공에 책을 더하면, 空冊이다. 이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두 발로 마음껏 돌아다니는 곳이 세상이라면, 나를 대표하는 두 손을 푹 담글 수 있는 곳이 공책 아닌가.
12. 공책에 필사를 한다. 눈으로 읽은 철학자의 문장이 손을 타고 흐른다. 글쓰기는 손의 운동이다. 운동은 운명을 바꾼다. 저자의 말처럼 “쓰기는 피부가 된 자신을 긁는 일이다.” 뜨거운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처럼 공책에 글쓰기는 자신을 울리는 초인종!
13. 어느새 내 손에서 흘러나와 내 발등을 적시는 나의 생각, 나만의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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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다녀왔습니다 | 인디스페이스,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이야기하다
🤔꿍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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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시나요. 혹자는 국내외로 잘 알려진 '봉박홍이'(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를, 어떤 분들은 <타짜> <명량> <극한직업>으로 대표되는 충무로 역대 흥행작을, 또 다른 분들은 <파수꾼> <벌새> <우리들> 등의 웰메이드 독립영화를 먼저 떠올리실 수 있겠습니다. 최근,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여러 인상과 관점이 혼재하는 '한국영화'를 조명하고자 한 행사가 있었는데요. 이제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에 대한 질문>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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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의 유운성 평론가님과 영화 <한국의 싫어서>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님의 세션을 들었어요. 토픽은 "창작자의 영화론은 왜 없는가?" 였는데요. 딱히 명확한 문장과 명쾌한 감독론을 전달받지 못했지만, 어떤 경로와 영향하에서 한 명의 영화감독이 되었는지 이야기들을 수 있어 곱씹어 볼만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장건재 감독님이 영화과에 입학하여 이전 세대 감독들에게 가르침 받은 썰과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명 깊게 본 영화들로 이어지는 연대기가 흥미진진했어요. 저는 저 나름대로 어쩌면 '한국영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갈무리해보기도 했고요.
지난 11월 9일과 16일 양일간 열린 기획전이라 시간이 좀 지난 감이 있지만, 한국영화에 대해 극장과 관객이 함께 고민해보는 특별한 시간이었기에 그 단편이나마 전달하고자하는 소개였는데요.. 60년대부터 00년대까지의 여러 자료를 살피는 재미, 근과거를 역사화하는 연구자들의 열정, 또 그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관심을 두루 느낄 수 있어 뭔가 알 수 없는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는 개인적인 소회를 남겨봅니다. 지나간 행사가 아쉬운 구독자분이 있으시다면 이번주 금요일(12.8)까지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를 방문해 보시길 권하며 글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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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나무 木'에 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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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북쪽 끝은 성삼재이다. 통상 지리산 종주라 함은 산청 대원사 지나 가랑잎초등학교을 경유, 유평계곡에서 출발하여 치밭목 산장 지나, 천왕봉에 올랐다가 두루 능선을 섭렵하고 코재 넘어 화엄사까지 훑는 길이다.(남에서 북으로 가는 경우) 고단하고 장엄한 길이다. 이런 길도 있다. 천은사 지나 남원, 인월로 이어지는 성삼재까지 아스팔트 길이 놓인 뒤 이제는 그 고개까지 차로 올라 노고단-반야봉-벽소령-장터목으로 이어지는 코스도 많이 선호한다. (북에서 남으로 가는 경우)
물론 지리산은 이게 다가 아니다. 소동파가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참모습을 알기 어려운 것은)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단지 이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일세)”이라고 노래하듯, 智異 속에서는 지리산의 地理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의 지리산 등산. 우리는 성삼재에서 지리산 주능선으로 가지 않고 더 북쪽으로 벗어나 만복대-정령치 길을 택했다. 이 길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설악산을 딛고 백두산까지 그야말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걷는다는 이른바 백두대간의 길이기도 하다. 과연, 걸음 지나지 않아 공룡의 등허리처럼 길게길게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이 눈썹을 때리기 시작했다. 지리의 바깥에 있기에 지리를 보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성삼재-만복대-정령치의 길은 말하자면 지리산의 외곽길이다. 그 길도 지리의 본류 못지않게 수려하고 식물상이 풍부해서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코스는 그리 험악하진 않지만 곰을 경계하는 현수막도 있어 그 산심의 깊이가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늦가을을 장식하는 수려한 꽃들이 높이에 따라 차례차례 있어 그 꽃들의 계단만 밟더라도 어느새 어렵지 않게 산중을 통과하여 목적지인 정령치로 운반되어 나오게 된다.
산국과 감국의 어울림, 개망초와 고들빼기의 흔들림, 구절초의 고고한 고독, 하늘 말나리의 우뚝함. 한 해를 마감하는 저 야생화들 곁에 세파에 시달려 때에 절은 내 감정을 나란히 꺼내놓고 세탁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구석도 후련해지고 마침내 이런 생각도 찾아오느니. 저 가을 들국화들의 껑충한 대궁을 보면, 여기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저 먼 바다 속을 유영하는 고래의 고개가 떠오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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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속 고래에게는 고개가 없다.” 이는 저 유명한 소설 <모비딕>의 중간쯤에서 내가 건진 문장이다. 고래에 관해 엄청난 정보를 제공하는 장편소설. 페이지 마다 가득 멸치의 눈처럼 까만 마침표들 사이에서 어쩌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전달하는 저 문장이 너무도 이상하게 고마워서 그때 나는 잠깐 독서를 멈추고 마른 천장을 잠시 바라보았더랬다. 아, 맞아, 물고기는 고개가 없구나....!
공기와는 비교도 안 될 고밀도의 높은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려면 천하의 고래라도 그리 안 되고는 못 배길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비해 부드럽기 짝이 없는 팔랑팔랑한 공기 속에서 이 야생화들은 대궁을 쑤욱 깜냥껏 빼올렸으니, 이 바람속의 훤칠한 대궁은 저 바다 속의 ‘없는’ 고개와 궁합을 딱 맞추는 것! 아무튼, 뭐, 그런 일견 싱겁고도 허튼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쉽게, 거뜬하게, 예상보다 일찍, 정령치에 내려섰다. 산속의 반반한 문명, 왁자지껄한 소음이 구름보다 가깝다. 멀리 건장한 나무가 있다. 무뚝뚝한, 튼튼한, 나무. 옆구리를 찢어 제각각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무. 이 나무는 사람이 심은 나무 모양의 나무다. 그래서 잎도 없고 가지도 없다. 죽을 줄도 모른다. 거저 앙상한 줄기로 캄캄한 방향만 알려줄 뿐이다. 땅에서 누가 공중으로 키우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 땅거죽에 잠시 때려박은 나무. 한자 ‘나무 木’의 모양을 충실히 받드는 나무.
보이지 않는 뿌리로 시작하여 본줄기, 줄기, 가지, 잎, 꽃으로 구성되는 나무의 길. 그 길은 마치 고향의 골목 끝에 매달린 나의 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기도 한데, 그 곡진한 구성을 ‘나무 木’은 이런저런 장식 없이 단박에 잘 보여준다. 저 나무 木을 오래 바라보면 그간 내 지나온 생애가 압축되어 비끄러매기에 딱 알맞고 다음 여정까지의 거리를 표시하기에 맞춤한 이정표 갖기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부터 지옥까지 000km.
지리산 정령치에서 만난 나무는 호쾌했다. 죽은 나무의 줄기처럼 의젓했고, 올해치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꽃받침만 얹어놓은 들국화의 대궁처럼 훤칠했다. 야윈 팔을 뻗어 여러 방향으로 제 갈 길을 친절히 안내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해발 1,172m의 높이에서 나무의 야윈 손이 가리키는 방향은 무려, 백두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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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기-록 (16) │ 교육과 철학
꿍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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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눈이 펑펑 내리고 보니 이제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 지났네요. 벌써 12월이라니.. 연말마다 이리도 빠르게 지나간 시간을 한탄하는 게 지겹지도 않은지 저는 올해도 여전합니다. 어쩌면 대표님께서 저번 서신에 말씀하신 평행한 세상과도 평행한 이야기가 이어지진 않을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면서 "슬기롭게 이기고 이어나가기를 빈"다는 격려를 되새기려고 합니다.
자연을 벗 삼아 영감을 얻으시는 대표님과 달리 저는 책이나 영화 등의 콘텐츠들에서 글감을 길어내곤 합니다. 이를 날씨마저 "극단만 무성해지는" 와중에, 통제 가능한 접촉을 통해 스스로 '절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구독 중인 OTT가 상단에 띄워주는 자극적인 콘텐츠의 릴레이로 한 해가 다 가버린 느낌이 들고, 저는 아마 높은 확률로 퇴근길에 티빙에서 <나는 솔로>와 <랩:퍼블릭> 아니면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나 <옥씨부인전>을 볼 것이기 때문이지요. 환경이 문제일까요? 제가 문제일까요? 내부와 외부로 문제를 환원시키는 방식도 이젠 지겹다고 느끼면서 항상 같은 고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곤 합니다. 그럴 땐 저 유명한 김연아 짤로 답 없는 생각을 종식시키려 하고요.
운동선수들의 목적의식과 자기 수양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부단히 움직이게 하는 걸까요?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에서 자기 형성(Selbstgestaltung)과 자기 수행(Selbstübung)을 중심으로 인간의 성장과 변화를 탐구하는데요. 단순한 자기 계발을 넘어, 인간 존재가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재창조해야 하는 존재임을 이야기하기에 요즘 화두 삼아 짬 날 때마다 읽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날씨와 연결 지어보면 불안정하고 가혹한 외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자기 형성과 수행으로 내면의 절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선호하는 절기를 떠올려보면 우선 춘분과 추분이 떠오르네요. 이전에 비해 낮이 길어지거나, 밤이 길어지거나. 내면의 낮과 밤을 조절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입동을 언급하며 자연에 사람의 격을 부여했다고 하셨지요. 그와 같이 수행이란 원하는 날씨라는 인격을 자기 안에 맞이하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줄줄이 멋진 말이지만 또 한편으론 그래서 뭐하니 혀를 차며 쫓아오는 회한을 쫓아내며 멋진 말도 지우고 잡생각도 지우고 이젠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문득 대표님은 김연아 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서신엔 제가 수행의 결과를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때까지 평안하시길요.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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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함 제18통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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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출판 kungree@kungree.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25-12 (10881) 031-955-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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