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 몇 개의 사물로 정리할 수 있지. 가령 옷으로 해 볼까. 호주머니 없는 배내옷을 비롯해, 주로 내의만으로 지내다가 알록달록 색동옷, 다시 단추나 지퍼가 달린 복잡한 외출옷, 이윽고 교복 다음에 양복, 그리고 세상과 산을 돌아다니며 고기능의 등산복, 그러나 결국에는 다시 호주머니 하나 없는 수의(壽衣)를 걸치고 그 어디로 떠나지.
필기구로도 사람의 짧은 일생을 정리할 수 있다네. 나의 경우, 연필에서 시작해 중학교 땐 만년필, 그리고 볼펜. 그러다가 칠판 앞을 떠나 방황하면서 여러 이런저런 필기구들, 다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먹을 갈아 붓을 자주 들지. 물론 몽당연필도 가끔 애용하기도 하고.
또한 말을 가지고도 일생의 순서를 배열할 수 있겠네. 사실 옹알이 수준의 말, 받침이 없는 모음 위주의 말, 이빨의 도움이 없어 불분명한 말, 누구나 잠시 지상에서 처음으로 모국어보다 먼저 구사하는 옹알이는 어디에 살든, 어떤 인종이든 사람이라면 다 비슷할 듯.
가끔 어린 시절 시골에서 구사했던 단어를 떠올리네. 필통, 책보, 분필, 걸상, 연필, 어려운 외국어로 크레용. 이제 저 말들을 쓰는 일은 없고 지금에야 그저 현금, 카드, 봉급, 아파트 등등의 말을 많이 사용하네. 말을 관찰하면 내가 묻힌 세속의 때가 습곡의 지층처럼 그대로 차례차례 드러나지.
이제는 희미해진 말도 더러 있네. 가불(假拂)이란 말도 먼지가 제법 묻은 말이지. 봉급쟁이라면 늘 입에 달고 다녔던 말. 무슨 일이 꼭 생겨 돈을 미리 당겨쓰야 하는 경우의 말이었지. 그땐 월급도 오늘날처럼 숫자로 띵 실감 없이 받는 게 아니라 침 발라 손으로 세는 봉투 속의 현금들. 모처럼 여기에 가불을 소환하는 건, 해가 바뀔 때면 늘 우리가 간지를 가불하는 셈이라서 그 말을 떠올려보았네.
양복을 입고, 아파트에 살고, 입식의 탁자에서 밥을 먹는 서양 위주의 풍속이네. 그러니 달력도 서기에 기원한 아라비아 숫자. 그 옆에 요란하게 올해의 간지를 쓰지만 새해와 설날은 분명 다르지. 다시 말해 음력으로 설날을 지나고서야 간지는 시작된다네. 말하자면 올해 들어 2025년과 함께 을사년 운운하는 건, 을사(乙巳)를 미리 가불하는 셈.
2025년이 열리고 벌써 보름이 흘렀네. 을사년이 밝았노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하네. 2025년과 을사년, 이 둘은 사실 구분해야 하네. 갑진년이니 을사년이니 하는 육십 갑자의 기준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기 때문이네. 나무의 가지와 줄기, 풀의 꽃과 잎을 구별해 주듯, 내 편의대로가 아니라 사물의 편에서 분명하게 구분해 주어야 하는 것.
달력을 바꾸며 이제 소한 지나 대한으로 접어드네. 입춘, 경칩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24절기가 완벽히 한 바퀴 돌았네. 인간이 겨울을 지내면서 추위가 워낙 압도적인 감각이다 보니, 24절기도 다른 대안 없이 그냥 소한, 대한의 이름을 직방으로 가져다 쓴 같군. 그리고 지금도 봄의 씨앗들은 이 추위 안에서 제 뜻을 지키고 키우려 차분히 ‘자기수련’하는 중이 아니겠는가.
봄을 구성하는 입춘, 경칩이 스프링처럼 탄력과 부드러움의 느낌이라면 소한, 대한은 양치식물의 잎맥처럼 충분히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네. 그러니 절기들도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가며 큰 원운동을 하면서 사계절의 한 주기를 완성해 가는 것 같군.
세상은 넓고 사시(四時)는 분명하네. 철학의 흉내를 내지 않아도 세상의 기본을 물, 불, 흙, 공기를 꼽는 건 자연스런 일이라네. 늘상 내 눈을 호리며 풍경을 이루고 있지만, 저들이 알맞은 비율로 섞이며 천하의 온갖 사물을 빚어내고 있지. 이들 또한 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 깜쪽같이 갈마드는 중이네. 24절기도 그런 순환의 고리를 이루어 나가듯.
파주 궁리출판 사무실 앞 조그만 샛강 둔덕에 수양버들과 귀룽나무 그리고 계수나무가 있네. 심학산을 배경으로 오늘도 선생님처럼 밤이 또 오면 누군가의 어깨라도 짚는 듯 계수나무 가지를 짚으며 달을 보네. 혼자 떠 있는 달.
나라도 보아주지 않으면 그냥 미안한 기분이 들어 잠깐이라도 하늘의 달을 꼭 우러른다네. 이는 그냥 단순히 고개를 젖히는 동작만은 아니네. 그것은 외로운 것, 높은 것, 쓸쓸한 것을 동경하고 단련하는 마음을 가슴에 고이게 하네. 비록 몸은 낮은 곳을 헤맨다 해도 정신은 저 고박(古朴)하고 우뚝한 곳에 걸어 놓으리라, 뭐 그런 생각을 품으며.
오늘처럼 조금 복잡한 심사가 쳐들어온 날이라면,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진득한 어둠에 내 모자란 마음을 섞어 저 알뜰한 달에게 그런 뜻의 일부라도 전해주고 싶은 것. 이 추위를 슬기롭게 견디고 나가세. 추위도 나한테 와서야 춥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