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꿍이의 말

🗓️ 절기-록 (22) │백조(百兆) 편의 날씨

꿍꿍이

하 수상한 시절에 시간이 참 빠르네요. 마지막 절기(節氣) 안부 드립니다. 경칩(驚蟄)엔 그간 웅크리고 있던 만물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시기라 그런지 과거엔 경칩을 맞아 올리는 제사가 있었다는데요. 선농제(先農祭)와 둑제(纛祭)라는 의례로, 각각 농업과 군권의 부흥을 기원했다고 해요. 더불어 농민들도 그 나름 개구리울음으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칩은 이제 와선 '개구리'라는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듯해요.

지난주엔 일출을 보러 오른 산에서 이른 개구리울음 소릴 들었습니다. 파주 출판단지는 아직인듯싶네요. 제 어린 시절만 해도 이맘때쯤 비가 내리면 시골길에 수백 마리 개구리가 뛰쳐나와서 시끄럽게 울어대고, 저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깨금발을 하고 귀길을 서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 날이면 경운기와 자동차 타이어에 밟혀 죽은 개구리로 가득했어요. 이후에 기후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은 예전만큼 그렇게 많은 개구리를 볼 수 없고, 매스컴에선 생태계 파괴를 한탄하며, 사람들은 기후 우울증을 토로합니다.

이제 봄이면 개구리 대신 반갑잖은 러브버그가 쏟아져 나옵니다. 경칩(驚蟄)의 '칩蟄' 자는 벌레를 뜻하는 한자라 어찌 보면 굉장히 적절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를 두고 기후위기로 발생한 혐오스러운 벌레라고, 아니 그래도 진드기를 박멸하고 환경을 정화하니 익충이라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걸 보면, 인간은 자연의 결핍과 풍요로움 모두와 불화하는 존재인듯합니다. "러브버그도 알면 사랑하게 될 거예요"(한겨례21_특집 1521호)라고 하지만 "앎"과 "사랑" 하는 것만이 모든 것의 답은 될 수 없겠지요. 요즘 같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좋기만 한 그런 말은 너무도 공허하게 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기를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일견 날씨는 갈수록 변화무상(變化無常) 하여 실시간 예보로만 파악 가능해 보입니다. 대표님의 말을 따르자면 무한한 존재의 편린만을 훑는 꼴입니다. 그러나 절기에는 무한함에 유한한 모양새를 갖춰주기 위한 인간의 오랜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리고, 무엇보다 어떤 기대를 갖고, 나아가 세계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는 것. 유한함을 수용할 때에야 관찰할 수 있는 다채로운 배치들, 예기치 않은 마주침이 있습니다. 그저 무한하기만 할 뿐이라면 그 모든 게 대수로울 것도 없겠지요.

🚋 횡단, 한국사│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다

李甲洙

1. 궁리 기획위원의 제안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독특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연표> 제작에 돌입한 건 제법 오래전의 일이다. 거개의 연표가 그렇듯 사실의 경중을 따라 두툼하게 년대순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막상 원고 수합에 나서고 나도 한 꼭지를 맡아 깊숙이 관여하게 되면서 전혀 뜻밖의 책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어느 지독한 공구서주의자가 4년의 기획과 자료 섭렵, 3년의 집필로 유례없는 역사 연표를 마침내 완성한 것!

    

   “역사의 부뚜막에 흩어진 짠맛/

   세월의 뒷골목에서 발굴한 깨알 지식/

   토막 난 팩트에 맥락을 불어넣어 생생한 사건들”

    

2. 궁리 책 <횡단, 한국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일 년을 단위로 한 페이지씩 역사의 조망도를 펼친다는 점이다. 즉 한 해를 펼친 신문의 한 지면으로 삼아, 주제를 뽑아내고, ‘한국 vs 세계’의 대조사를 마치 드론을 띄워 조망하듯 살피는 것이다. 지구가 축구공처럼 맨맨하였다면 지상의 일도 그리 복잡하게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서 태평양의 심해까지 지구의 층위는 너무나 다양하다. 지구는 아주 높고, 지극히 깊고, 매우 넓고, 충분히 울퉁불퉁하다. 역사의 복잡다단도 다 이런 지형과 생태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다/

   역사는 가장 오랜 오늘이다/

   연표는 그날로 가는 지름길이다”

3. 우리 역사 5천 년을 전부 할 수는 없고, 자료가 그마나 남아 있는 근현대사 120년을 하자고 시간의 범위를 정했다. 어느 시대인들 소용돌이가 아니랴만, 특히 이 구간은 아찔한 낭떠러지가 첩첩이 쌓인 마의 구간이다. 이런 말을 준비해 보았다.

“오늘의 연표로 내일의 역사를 준비한다.

모든 날은 가장 젊은 날이다.

역사를 겪고, 역사에서 튀어나와, 역사를 이룬다.”

4. <횡단, 한국사>는 ‘선택과 집중’을 철저하게 구사한 역사책이다. 아무리 입체적 사건도 단순히 나열만 하면 혼이 사라진 평면적 사실에 불과하다. 월화수목금토일, 퐁당퐁당 일주일에 담기는 나날의 삶은 다시 월, 년으로 묶이며 춘추가 된다. 흩어진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선택하고 집중하면 역사는 태백산맥같은 맥락이 생기고 그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 비탈진 경사의 골짜기에서 꼬물꼬물 살아가는 민초들.

“형광등에 전기 통하면 빛이 팍 터지듯,

토막 났던 역사적 사실들이 시간의 옷을 입고,

저마다 소리치고 주장하며 아우성친다!”

5. 지난 연표를 더듬는 일은 어쩌면 젊은 날을 찾는 것이고 고향을 찾는 일이고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시간은 개인을 휘젓고 오늘의 연표로 내일의 역사를 준비한다. 모든 날은 가장 젊은 날이다. 역사를 겪고 역사에 튀어나와 역사를 이룬다. 나의 하루는 역사의 깨알, 격동의 최근 120년을 선택과 집중으로 살피며 조망한다.

“거대한 역사를 마주하고,

미세한 일상을 겪으면서,

우리는 매일매일 연표를 써나간다!”

6.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교실에서 일본에 당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중국 학생들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섬나라 일본한테 속절없이 당한 지난 사실들이 원통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책상을 치며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옛일로만 알다가, 이 책의 한 코너인 <이 해의 풍경> 120꼭지를 쓰면서, 근현대사의 현장을 직접 거니는 듯 실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역사적 팩트는 드러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역사의 뿌리가 간교하게 상호 간섭하고 얽힌다는 것이다. 우리 국토가 훼절되고, 우리 백성이 감당하였던 시간과 겹쳐보자니, 충분히 분하고 고통스러웠다. 더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을 누리며 대대로 이어지는 <우리 안의 친일(親日)>의 실체를 목격하는 건 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 쇼크!를 극복하는 응급약은

역사를 보는 자신만의 안목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내 자리를 찾는다”

7. 그러던 중 참으로 어이없게도 <계엄>이 터졌다. 팥알만한 상식이라도 가진 이라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돌출적인 내란 사태였다. 그 참으로 같잖은 사태의 전말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아직도 탄핵의 결론은 진행 중이다. 그날 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순간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산회를 선포하는 방망이를 두들기기 전의 ‘한 말씀’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 책의 한 페이지에 기록해 두고 싶을 만큼.

“근대-식민-독립-독재-민주-선진을 지나

지금 우리는 역사의 한고비를 넘는 중!

 국민은 기억하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8. <횡단, 한국사>의 마지막 장면은 갑자기 눈 내린 서울역에서 어느 행인이 노숙자에게 방한복과 장갑 그리고 약간의 용돈을 챙겨주는 모습을 우연히 본 어느 기자의 목격담이다. 그 사진은 많은 것을 은유케 하는 사진이다. 폭설이 내린 바닥을 감당하는 것도, 그 바닥의 눈을 치우는 것도, 그 눈물을 일용할 양식으로 쓰는 것도, 역사의 수레를 밀고 감당하는 것도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들이다. 아무리 거대한 역사도 결국 미세한 개인들에 의해 마무리되는 것.

9. 역사는 원운동이다. 오늘과 그 모든 사건은 중심과 반지름의 관계다. 죽음이 태어난 순서대로가 아니란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역사는 변두리의 개인을 중심으로 자꾸 밀어넣는다. 지난 100년을 바로 보며,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연표. 이제껏 출판된 것과는 차별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역사 연표, <횡단, 한국사 1901-2021>.

--살아있는 교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정확한 역사 지식이 똑바로 선다!!

--맥락 있는 서사가 살아 꿈틀거린다!!!

👩‍🏫비블리오마미

선 굵은 흑백 그림의 에너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가 돋보이는 이란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와 『바느질 수다』를 3월의 책으로 골라봤습니다.

특히 자전적 그래픽 노블인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억압적인 사회상황, 전쟁, 문화적 갈등 속에서 자라는 주인공 마르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1979년 일어난 이란 혁명으로, 미국이 지지한 독재자 샤가 쫓겨나고,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득세하게 됩니다.

소녀 마르지는 히잡 착용 등의 규율을 강제로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개방적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은 억압적인 환경에서 반항적인 모습이 커져가던 마르지를 유럽으로 보내지만, 정체성 혼란과 고립감을 겪으며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이후에는 이란을 영원히 떠나 프랑스에 정착합니다.)

『페르세폴리스』는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넘어서서, 억압적인 체제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려는 모습들을 잘 기록한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계엄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쳐 보이는 부분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사회의 노력 등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바느질 수다』는 이란 여인들의 시원 통쾌한 수다의 시간을 담아낸 책으로, 읽는 내내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 생각났답니다. 여성들의 서사와 연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부터 먼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그래픽 노블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지는 3월 보내시길!

한(漢)글자 아넥도트│山是山, 水是水(산은 산, 물은 물)에 대하여

李甲洙

경기도 마석의 태동고전연구소에 야외수업하러 가는 날. 노자 공부 모임에서 기획한 모처럼의 나들이였다. 노장사상에 정통한 사부님과 천호동에서 만나 시원한 물냉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시간이 남아 풍경이 툭, 트인 카페에 잠시 들렀다. 그 자리에서 사부님이 문득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어느 곳, 어느 시간에 머물 때 같은 장소에 있는 것으로 여기기가 쉬운데, 실은 저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 속을 각자 거닐고 겪으며 통과하는 중이지요. 같이 여행을 다녀도 기억이 다 다른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근래 <상대성 이론>에 관한 공부를 하다가 귀동냥한 바도 있어 저 말씀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없고, 너만 보이는 눈앞의 풍경. 그 기이한 현상을 조목조목 짚어나가면 내 나름의 깜냥으로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였다.

냉정히 관찰해본다. 눈앞의 자연은 탄복할 만한 재주를 지녔다. 이 세상의 천하 만물에게 자신을 ‘동시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서도 단 하나의 충돌도 없이, 현 사태를 유지 관리하는 자연의 경영 기술이 아닌가. 그러는 와중에도 자연은 시시각각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는 이들을 안심시키느라 안간힘을 다해 안 변하는 척, 정말 고수의 묘기를 부리고 있는 것!

그러나 정말 그런 줄로만 알고 수수방관하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내가 만일 무방비로 대한다면, 항상 변하지 않을 것이라 깜쪽같이 속이다가, 어느 날 나의 生活에서 나를 움푹 삽으로 떼내어, 지금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는 저 풍경의 한구석으로 매정하게 나를 데리고 가서 매장해 버리는 게 또한 자연의 성질인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예의 노자 공부하고 뒤풀이하러 가는 길. 어둠이 질퍽하게 내려앉은 먹자골목 길바닥에서 사부님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가 무슨 뜻이겠느냐고 문득 물었다. 저 말하기 좋은 짧은 말이야 오래전에, 이미 여러 번, 들은 바도 있고, 굳이 그냥 말 안 해도 다 아는 것으로 치부해 왔다. 하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면 말이 또 궁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