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꿍이의 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다

장석봉(『횡단, 한국사』 기획 및 집필자)

9시 29분경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해경 헬기가 본선 접근 중입니다.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9시 42분

“현재 위치에서 이동하지 마시고 안전하게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9시 45분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 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천-제주 항로를 운행하는 연안여객 선인 세월호가 오전 8시 58분 해경에 조난신고를 했다. 수학 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339명을 포 함해 승객 476명이 타고 있었다. 여객선은 전복해 침몰했고 이 참사로 모두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 『횡단, 한국사』, 2014년 부분

📘이달의 단편 │「유령이 출몰할 때」

『폴링 인 폴』 | 백수린 | 문학동네

🤔꿍꿍이

K구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유령이 처음 나타났을 때, 연기처럼 희뿌연 몸체를 보고 그것을 밤하늘에 쏘아올린 홀로그램으로 착각했다. 유령은 해가 지면 나타나서 K구역 일대를 돌아다녔다. 유령이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것은 무너지고 불타올랐다. 그러나 뉴스에서 그에 대해 한창 시끄럽게 떠들던 무렵, 나는 고시촌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 소식을 생생하게 듣지는 못했다. K구역을 초토화시킨 유령은 할일을 다 했다는 듯 잠잠히 거리를 배회했다. 사람의 발길도 끊기고 더이상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던 그 지역은 사람들 사이에서 금세 잊혀졌다. 일상은 정신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원래 일상은 그런 것이다. 마치 사막의 마른 유사流砂처럼 한번 잡아끌기 시작하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것.

- 백수린, 「유령이 출몰할 때」 중에서

한(漢)글자 아넥도트│'죽을 死'에 대하여

李甲洙

그대 이 세계를 단박에 표현해보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우선 심호흡하면서 한 획부터 그어야 하지 않을까. 짐승의 얼굴을 다 그릴 수 없고, 나무의 뿌리를 다 들출 수 없다. 태양과 달은 참으로 알맞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 세상을 그윽하게 옆으로 한 일(一)자처럼 긋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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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다. 잔인한 계절이라 하지 않아도 봄바람의 훈훈함 속에 꽃샘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다. 사월이 아무 일 없이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봄 향기 속의 따끔함.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다. 대신 F층이다. 4의 발음이 ‘죽을 사’와 같아서 그걸 피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그리도 무서운가 보다. 외면한다고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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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이라 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사월이라, 사월이니, 차라리 사월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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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예술에서, 문학에서, 삶만큼이나 빈번하게 다루는 주제가 죽음이다. 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죽음이 없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질까. 저 유명한 하이데거도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있음’에 대해 유일하게 질문하는 존재라고 말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죽음을 미리 목격할 것을 권한다.

지금 저는 제주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검사, 변호사 생활을 거쳐 작년 가을 학기부터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편을 잡은 <사랑과 법>의 저자 장혜영 교수를 만나고 왔거든요. 벚꽃은 이미 졌지만, 4월 제주대 캠퍼스의 푸르름은 학생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함께해 더욱 에너지가 넘쳐 보였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건물을 막 들어서는데, 한 강의실에서 수업 후 제자와 질의응답을 나누는 장혜영 교수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도 워낙 소탈한 분이었는데, 한라산 자락이 보이는 그의 연구실 또한 방의 주인을 닮았더군요. 테이블 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그답게, 그가 좋아한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사랑과 법—생존을 위한 두 가지 요건>을 펴낸 후, 다음 작품 집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조심스럽게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단 몇 명의 인물이 전개해나가는…. 저는 드라마나 영화의 신(scene)으로 자신의 글이 입체화될 때를 상상해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전문직 필자군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영역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내는 모습들이 눈에 띄는데, 그런 동향들도 함께 이야기하고요.

강단에서 변호사 시험 합격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쌓였던 긴장을, 일단은 아무런 목적을 두지 않은 글을 쓰면서 지혜롭게 잘 풀어내는 장혜영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작품은 그러한 무목적의 시간 속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설 초고가 완성되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반짝이는 원고를 받으면 여기에도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