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영화 | <승부>
한(漢)글자 아넥도트 | '가운데 中'에 대하여
🪁5월의 추천도서 | 청년들이 기록한 자신들의 목소리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펴낸 김경만 교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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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4월 말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란 예측과는 달리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부지런히 나들이 다니시느라 분주한 시간 보내시고 계실 거라 예상되는데요. 너무 덥거나 추운 기후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와중에 찾아온 좋은 날씨를 부디 많은 분들이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이번 레터는 가정의 달 5월에 보실 만한 영화와 책들, 글과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영화 소개 코너에선 <승부>를, 추천 도서 코너에선 청소년을 다룬 책 세 권을 꺼내보았어요. <한글자 아넥도트>에센 이쪽이나 저쪽이나 치우치기 쉬운 격랑의 시대에 중용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랜 칩거를 깨고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로 돌아온 김경만 교수님의 인터뷰까지, 제28통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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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스승의 날에 최강 사제 격돌 실화 영화를 소개 드리게 되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로도 볼 수 있게 되어 더 편하게 보실 수 있게 되었는데요. 바로 바둑 기사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관계, 그리고 그들의 대결을 다룬 <승부> 입니다. 이들의 사제관계는 조금 특별해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훈현이 바둑계를 키우고자 신동 이창호를 집에 데려오고, 결국에 제자가 스승을 어린 나이에 따라잡게 되는 이야기. 여기까지 말하면 뻔한 클리셰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승부>는 이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해도 선생 노릇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조훈현은 줄담배를 끊고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다 끝난 줄 알았던 바둑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영화는 조훈현이 이창호를 이기는 장면으로, 재기에 성공한 스승의 모습으로 끝나게 되지만 아직도 그들이 2025년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화면이 이어집니다. 흔히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곤 하는데 바둑을 잘 모르는 관객들까지도 인생과 바둑을 어쩐지 이해하게 만드는 연출이 아니었나 싶어요.
3월에 개봉한 뒤 실제 대국 당시에 남아있는 자료가 근래 다시 회자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고, 실제로 저도 위키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볼 정도로 한동안 <승부>에 빠져있었어요. 특히 금연 이후 수준을 끌어올린 조훈현 9단이 금연초 광고 모델이 되었다는 후문이 흥미로웠는데요. 극적인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대국들처럼 다 보고 나서도 흥미로운 여담들로 즐거웠던 영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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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가운데 中'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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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순간의 단절이나 생략도 없이 연면(連綿)하게 이어지는 게 시간의 흐름이다. 빛도 실처럼 그렇게 이어져 이 세계를 이루고 이 세상을 밝힌다. 그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이어지고 잇닿은 생활에서 중요(重要)하고 안 중요한 게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그 비중(比重)은 있기 마련이다. 호흡에도 들숨과 날숨이 있어, 순간순간 교차하는 그 역전의 순간마다 잠시 빈틈이 있지 않은가.
국어사전은 가나다 순이고, 영어사전은 알파벳 순이다. 복잡하기만한 한자를 다루는 옥편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만물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상을 적확하게 다루는 한자는 부수(部首)로 그 체계를 잡는다. 1획부터 17획까지,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부수는 전개된다. 그러니 옥편의 순서는 아라비아 숫자순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총 235개로 구성된 부수는 세상을 한 획으로 정리하는 한 일(一)부터 시작한다. 눈앞의 광활한 세상을 상징하는 지평선에서 젓가락 하나만큼 움푹 떼내어 수평으로 갈음하여 표현하는 것. 그렇게 한 일(一), 그것만으로 이미 한자의 세계는 영어 ONE, 한글의 하나 등 기타의 문자들이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직관의 미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이처럼 옥편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간단한 한자들은 이 세계의 기초와 근본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이런 궁리(窮理) 드는 것이다. 가볍고 간단한 것에 세상의 중요한 것들이 다 있구나.
매우 고마운 한자들인 ‘위 상(上)’, ‘아래 하(下)’ 그리고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글자인 ‘아니 불(不)’이 모두 한 일(一)의 부수에 속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부수는 ‘丨’ 이고 이는 “위 이래로 통할 곤”으로 읽는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정확하게 서는 글자이다. 이 부수에 속하는 한자는 많지 않지만 고추처럼 매운 한 글자가 있으니, 가운데 중(中)이다. |
소리 글자인 한글의 자음 중에는 ‘리을’처럼 부드럽고 상냥하여 이 세상의 변화를 잘 흡수하는 자음이 있는가 하면 ‘미음’처럼 세상의 중심을 굳건히 잘 붙드는 것도 있다. 사람, 마음, 몸처럼 단단한 미음이 있어 흔들리기 쉬운 이 세상이 그나마 이 정도로 반석(盤石)처럼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
한글과 한자를 섞는 게 좀 억지스럽긴 해도 이렇게 궁리해 본다. 그 단단한 미음(ㅁ) 같은 돌에 ‘위 아래로 통할 곤’으로 과녁을 뚫듯 가운데를 맞추는 것, 그게 이른바 ‘가운데 중(中)’이다. 물론 이는 과녁의 정중앙을 목표로 하듯, 가운데를 뜻하지만 이외에도 적중(的中)하다는 뜻도 갖는다.
과녁의 중앙을 지향하는 가운데가 애매하게 중간만을 뜻하는 건 결코 아니다. 자칫 속단하기를 어떤 견해에 대해 해결이랍시고 기계적 중간을 맞추려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중(中)의 의미를 정말 적확하게 긴요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용(中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된다. 흔히들 중용에 대해 ‘중간의 도’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게 결코 아니다. 중용은 중과 용, 두 개의 동사이다. 중은 가운데라기 보다는 적중하다는 뜻이다, 용은 항용 늘 꾸준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상에 있어 늘 적중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한결같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허기질 때 밥 먹는 것, 머리가 고플 때 책 읽는 것, 논어의 첫대목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또한 일상 중에 늘 공부하고 익히라 했으니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것과 맥이 닿는다 하겠다. 그러니 중용의 도란 과녁에 적중하러 공중을 날아가는 화살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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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추천도서 | 청년들이 기록한 자신들의 목소리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 임하영 | 천년의상상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 노정석 | 정미소
─『패트릭과 함께 읽기』 | 미셸 쿠오 | 후마니타스
👩🏫비블리오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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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딸아이를 호수공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습니다. 졸업사진을 찍는다나요. 참 클리셰 같지만, 이맘때 초록은 10대 후반의 딸아이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5월에는 청소년이 쓰거나 청소년과의 경험을 다룬 책들을 골라봤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임하영)과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노정석)는 청소년들이 쓴 책입니다. 한 명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일반 학교를 다녔습니다. 두 책이 나온 지가 좀 되었으니 저자들은 지금은 모두 20대가 되었겠네요.
어쩌면 두 청년은 우리 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은 아닌 것 같아요. 임하영 군의 가족은 오래전 홈스쿨링 다큐에 나온 적이 있기도 한데, 미네르바 스쿨 진학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노정석 군이 쓴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는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으로, 저자는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이 두 청년의 삶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네요. 이 청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좀더 솔직하고 깊게 대면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는 대만계 미국인인 저자가 미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대안학교에서 만난 조용한 소년 패트릭과 글쓰기 수업을 하며 나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러 환경 탓에 세상에 대해 무감했던 패트릭은 저자를 만나 글을 쓰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느낍니다. 이후 저자는 로스쿨로 진학을 하게 되어 학교를 떠나는데, 패트릭이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되었다는 기별을 받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패트릭의 삶을 바꿀 수 없었던 걸까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한 걸까요. 많은 물음을 해보게 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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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펴낸 김경만 교수 인터뷰
Q∥ 30여 년 간 서강대에서 사회이론을 가르치며, 『담론과 해방』,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Bourdieu’s Philosophy and Sociology of Science』 등 오랜 시간 학술 서적만을 펴내시다가, 이번에 어려운 사회이론들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쓰셨습니다. 특별한 집필 계기가 있으신지요?
A∥.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는 사실 저에게 오래된 숙제였습니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회과학의 철학적 혹은 이론적 기초에 관한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에 쓴 책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말해보죠. 이론에 관심있는 많은 학생들이 저에게 와서 이런 얘기를 꺼냅니다. “선생님, 요즘 푸코를 읽고 있는데 이런 점은 재밌지만, 이런 점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이 학생에게 “그럼 구조주의는 어떤 것인지 이해하나요?”라고 물어보면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안다고 해서 몇 마디 물어보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학생들은 사회과학, 혹은 철학은 기초가 없이도 그냥 ‘읽어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도 수학과 마찬가지로 기초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초 없이는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는 학생들과 이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푸코, 하버마스, 기든스, 부르디외등 현대 이론의 거장들의 저작을 이해할 수 있는 소위 ‘기초체력’을 단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토마스 쿤, 피에르 부르디외,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 20세기 최고 학자들의 사상이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는데, 왜 이들은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에서 이론적 영감을 얻었는지요?
A∥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연장선상에서 왜 ‘규칙 따르기’가 현대 사회이론의 거장들의 사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는가를 얘기해보죠. 이론가들이 행위자들의 세계를 이해하려 할 때 그들은 행위자들의 행위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행위자들의 행위는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그리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죠. 각기 다른 이론적 전통에 속한 이론가들은 이런 구조를 여러 관점에서 이론화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기능주의 사회학에서 행위의 규범구조, 경제학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론, 구조주의, 혹은 마르크스 이론 등이죠. 그러나 토마스 쿤, 피에르 부르디외,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 현대 이론의 거장들은 기존의 이론들을 비판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개념이 행위자들의 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이론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책에서 자세히 얘기하고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개념은 구조를 일종의 닫힌 개념으로 이해했던 이전의 이론들과 다르게 구조가 행위자들의 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것인 동시에 그것의 변형을 가능케 해주는 ‘열린 장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죠. 기든스의 말을 빌면,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는 구조의 ‘이중성’(duality of structure)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Q ∥‘철학자와 개념’을 연결한 제목의 시리즈를 차기 작업으로 이어가셔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어떤 철학자들과 개념을 다루고 싶으신가요?
A ∥ 물론 여러 학자들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학자를 하나 고르라면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마치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 Network Theory)이 사회과학과 철학의 지형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이론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외국에서도 라투르의 명성이 높지만 우리나라 에서처럼 단순히 라투르의 업적을 칭송하는 수준에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라투르의 이론과 이 책의 규칙 따르기 논의를 간략히 연결해보면 왜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이 라투르 자신이 주장하듯이 ‘이론이 아닌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라투르의 비환원주의에 대한 옹호는 행위자들의 규칙 따르기를 규칙 따르기 ‘밖’의 맥락에서 생산되는 어떤 이론으로도 환원시켜서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라투르는 마치 인류학자들과 가핑클 같은 민속방법론자들처럼 ‘어떻게’ 행위자의 연결망이 하나의 규칙 따르기에서 다른 규칙 따르기로 이행되는 가 (즉, 네트워크의 확장 혹은 축소)를 ‘묘사’할 뿐 ‘왜’ 새로운 규칙 따르기가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모두 사회과학자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라투르는 이 책에서 논의되는 마르크스의 상품숭배이론과 물화이론의 중심이 되는 지배를 비판하는 부르디외나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을 ‘김빠진 비판’이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은 라투르가 이러한 ‘반 반숭배론’ (Anti-antifetishism)을 여러 곳에서 주장한 것을 잘 모를 겁니다. 만약 라투르의 비환원론에 대한 비판을 쓰게 된다면 과연 라투르의 반 비판이론이 얼마나 성공적인를 평가해보는 책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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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출판 kungree@kungree.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25-12 (10881) 031-955-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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