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과 영화 | 『높은 성의 사내』 & <하이-라이즈>
한(漢)글자 아넥도트 | 알 환(丸), 붉을 단(丹), 주인 주(主)에 대하여
🏡이곳에 다녀왔습니다 | 유튜브 ‘작업의 자유’ 촬영 참관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무지한 스승』을 번역한 양창렬 역자 인터뷰
🎁펀딩 소식 공유 | 『관계의 수학』 권미애 작가의 감정 워크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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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한 달 만에 돌아온 궁리함 입니다 📬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을 맞이한지도 이제 막 2주가 지난 시점이기도 한데요.
독자분들이 앞으로 기대하는 나라와 정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번 레터는 단순한 정치적 전환을 넘어, 우리가 일상에서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지 천천히 이야기해 보고자 준비해 보았습니다.
조금 오랜만에 왔으니 소개해 드릴 영화와 소설을 한 번에 가지고 왔습니다. 대선과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는 데 어울리는 『높은 성의 사내』와 <하이-라이즈> 소개, 재밌게 읽어주시기를요! <한글자 아넥도트>에서도 붉을 단(丹), 주인 주(主) 투표와 어울리는 한자들이 등장합니다. 메이우드 편집자는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의 저자 김경만 교수님의 유튜브 촬영 현장을 다녀와 생생한 현장 후기를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지한 스승』의 역자 양창렬 선생님의 인터뷰와 깜짝 펀딩 소식까지! 이번 레터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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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소설과 영화│ 『높은 성의 사내』 & <하이 라이즈>
🤔꿍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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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신병 환자로 가득해. 미친놈들이 권력을 잡았어. 우리는 언제부터 그걸 알았을까? 언제부터 직시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까? 로체는 모른다. 스스로 미친 걸 안다면 미친 게 아니지. 아니면 마침내 제정신을 차리는 중이거나. 깨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 필립 K. 딕, 『높은 성의 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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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 소개는 『높은 성의 사내』 중 한 등장인물의 독백으로 열어봅니다. 『높은 성의 사내』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과 일본이 승전한 1962년이 배경인 대체 역사물로 흑인과 유대인, 그리고 일본인이 아닌 동양인들이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그립니다. 저 대목을 처음 읽고선 작년 12.3 계엄일에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법한 생각이라고 느꼈는데요. 나치즘과 제국주의가 패권을 잡은 세상보단 낫겠지 위안을 해보다가도 어째 근래 정세와 상황을 살펴보면 현실과 일치하는 지점이 많아 섬뜩하기도 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 핍박받는 자들에게도 단 하나의 희망이 있었으니. 바로 '높은 성의 사내'라 불리는 작가의 소설인데요. 그가 쓰는 반체제적 소설이 차별받는 사람들을 북돋고 나치와 일본 제국의 거짓과 부조리를 폭로하기에 지배자들은 '높은 성의 사내'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필립 K. 딕의 장기가 등장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인물들은 이내 소설과 현실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불평등과 갈등, 통치와 저항 그리고 '높은 성의 사내'를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J. G. 밸러드의 원작 소설로 만든 영화 <하이-라이즈>인데요. 높고 계층화된 주상 복합 단지-아파트를 설계하고 이상 사회를 만들어보려고 했던 인물(건축가)이 어쩌면 가장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까지도 닮아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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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는 197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첨단 시설을 갖춘 초고층 아파트 '하이-라이즈'에 가족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입주한 한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40층짜리 아파트에서 그는 25층을 배정받는데요. 층수가 바로 그 사회 내의 위계를 의미합니다. 전문직에 속하는 의사는 중층, 건축가와 엘리트 계층은 상층, 하층에는 노동자 계층이 위치하는 식으로요. 설계자는 이러한 배치,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파티로 하는 이동과 소통이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할 거라 믿지만 이 고급 아파트는 예정된 파국을 맞이합니다.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은 영화답게 잘 살던 사람들이 어쩌다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지 그다지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이-라이즈'의 구조적 구획과 설계 그리고 자유주의적 방임이 어떻게 맞물려서 실패에 이르게 되는지도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드러났고요. 하지만 하층계급의 반발-혁명 이후 상류층이 어떤 교훈을 얻고 세계를 재편하는지는 통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는데요. 앞서 이야기한 소설과 영화가 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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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라 행위자가 되려 한다. 스스로 신의 권능을 가졌다고, 신과 같다고 믿는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지닌 근본적 광기다. 그들은 어떤 전형적인 모습에 짓눌려 있다. 그들의 자아는 정신병자처럼 과대망상에 빠졌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신성神性이 끝나고 그들 자신이 시작하는지를 모른다. 자만도 아니고 긍지도 아니다. 자아가 극단적으로 부풀어 오른 상태다. 숭배하는 자신과 숭배 받는 존재 사이의 혼란이다. 인간이 신을 먹어치운 게 아니라 신이 인간을 먹어치웠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건 인간의 무기력함이다. 나는 약하고 작으며, 우주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다. 우주는 내게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눈에 띄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게 나쁠 게 뭔가? 오히려 그편이 더 낫지 않나?
- 필립 K. 딕, 『높은 성의 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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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은 지배자들에 대해 위와 같이 논평합니다. 우리가 자꾸 강함과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에만 집착한다면 사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주 약하고 작은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요. 앞으로 도래할 어두운 시대에 대한 구독자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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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알 환(丸), 붉을 단(丹), 주인 주(主)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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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는 알아주는 무협영화다. 일대종사(一代宗師)란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무술의 역사에서 그야말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란 뜻이겠다. 영화는 그런 뜻을 받든다는 의미일까. 다음과 같은 멋진 한자 구절로 시작한다.
“쿵후는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수직과 수평. (功夫,兩個字:一橫一豎)”
수직과 수평. 이는 단순히 수학의 용어만은 아니다. 그저 오리무중인 세계의 구조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고, 그 세상에 담겨 퐁당퐁당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저마다 짊어진 삶의 한 은유이기도 하다. 과연, 일생의 동작은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다. 아침에 수직으로 일어서서 일하다가, 저녁에 수평으로 눕는 마무리. 이 반복된 일상의 적분이 곧 일생이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수직과 수평은 삶과 죽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겠다.
한자는 세상을 복사하듯 그대로 사생(寫生)하는 문자다.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복잡하게 사물과 사태, 개념과 추상을 표현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옥편은 이런 방대한 한자를 부수(部首)로 분류하는데, 그 처음은 한 일(一)이고 그 다음은 ‘위 아래로 통할 곤(丨)’이다. 이들은 수평과 수직을 대표하는 획이다. 그러니 일대종사에 기대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공부란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수직과 수평.”
한 일(一)의 부수에는 중요한 글자들이 많다. 위 上, 아래 下, 세상 世, 석 三, 일곱 七, 무엇보다도 아니 不. 다음으로 ‘위 아래로 통할 곤(丨)’에는 한 글자만 기억하면 된다. ‘가운데’와 ‘적중하다’를 뜻하는 中. 이렇게 작고 짧고 간단한 성분만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
굳세고 딱딱한 뼈도 관절이 있어야 뼈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 그처럼 수평과 수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점 하나가 필요한 것이다. 공간에서나 문자에서나 언제나 점은 점 이상이다.
기하학에서 제로(0) 차원인 점은 위치, 무게, 길이, 부피도 없다. 없으면서도 지니는 존재감! 그것이 없다면 이 세계는 아무런 구별과 구분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당장 지금 이 치졸한 글에서 점, 마침표가 없다면!
한자에서 점은 ‘점 주’이고, ‘丶’으로 표기한다. 수학적인 점(.)을 문자 조형의 예술적인 점(丶)으로 호쾌하게 처리한 것일까. 이러한 점을 부수로 하는 글자는 알 환(丸), 붉을 단(丹), 주인 주(主)를 기억해야 한다. 이 단어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계엄, 탄핵, 선거--과 그대로 주르륵 엮여진다.
주권자들은 저마다 한 조각 붉은 마음, 이른바 단심(丹心)을 지닌 이들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이 계엄이 발동되었을 때, 발 벗고 나서 이 얼토당토 않는 사건을 저지한 이도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탄환(彈丸)보다 더 강력한 투표를 통해 이 민주공화국의 주인(主人)이 자신들임을 확인하였다.
丹, 丸, 主.
특히 왕(王)자 위에 무심히 툭 찍힌 점 하나. 주인 주(主)를 오래 바라본다.
민주주의(民主主義)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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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다녀왔습니다 | 유튜브 ‘작업의 자유’ 촬영 참관
─김경만 교수님과의 대담 현장에 다녀오다
🌳메이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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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작업의 자유(opus liber)’라는 유투브 채널에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쓴 김경만 교수님이 출연하셔서 다녀왔습니다. 철학자인 이병익 선생님이 운영하는 이 채널은 인문과 예술을 아우르는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곳입니다. 그중 진행자도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롱테이블 세미나’는 대표 코너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침 김경만 교수님의 제자분도 참석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교수님의 제자 사랑은 지극하셔서, 만일 ‘다 모여라!’ 하면 꽤 넓은 촬영 공간에 꽉 찰 거라고 하셨습니다.^^)
진중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병익 선생님의 질문과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한 김경만 교수님의 이야기가 마치 창과 방패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저는 이 대화를 통해 김 교수님의 학문을 대하는 자세와 학계의 풍경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며, 교수님의 다음 저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김경만 교수님이 어렸을 적에 무협지 등을 많이 읽으셨다고 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데, 이러한 ‘내러티브’의 힘이 교수님의 공부와 진로 결정, 집필 스타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은 ‘공부’라고 하는 것을,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 계속 책과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고요. 한국의 학자들이 서로의 연구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과 코멘트가 없는 부분이 많이 아쉽고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언어가 있는 학자 사회였으면 한다고도 하셨고요.
*대담 영상은 지금 한창 편집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영상이 올라오면 다시 공유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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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무지한 스승』을 번역한 양창렬 선생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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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무지한 스승』이 2008년 가을께 출간되었으니, 양 선생님이 이 책을 번역한 지도 17년이 넘은 셈입니다. 얼마 있다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A ∥ 17년이라니… 듣고도 믿기지 않네요! 『무지한 스승』을 처음 번역할 당시에는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어요.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죠. 지금은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밤에는 책을 읽는 루틴을 만들려고 고군분투 중입니다. 아직 풀어내고 싶은 화두를 찾지 못해 책을 쓰는 건 꿈도 못 꾸지만, 공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독자들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현대정치철학연구회에서 랑시에르 읽기 모임을 몇 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근황이겠네요. 토요일 오전(!)마다 열리는 랑시에르 읽기에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Q ∥ 『무지한 스승』을 비롯하여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해방된 관객』, 『모던 타임스』 등 랑시에르의 책들을 꾸준히 번역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랑시에르와 그의 책들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유럽 현대 철학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대안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수입되었다면, 2010년대 이후 랑시에르는 주로 ‘미학적’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이론이 한때 미국의 비교문학과를 통해 들어왔다면, 지금은 주로 미학과나 예술학과를 통해 수용되는 셈이죠. 2010년대 국내 여러 전시의 기획문이나 작품 스테이트먼트에서 랑시에르가 인용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어요. 아마도 랑시에르의 정치-미학이 가진 ‘힙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힙함’은 그린버그식 모더니즘, 매체 특정성 이론, 관계적 예술 같은 당대 예술의 주요 프레임들을 통쾌하게 ‘모두 까기’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테고요.
다만, 랑시에르에 대한 관심이 문학, 예술, 교육 분야에 국한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랑시에르 관련 학위 논문 대부분이 교육학과나 미학과/예술학과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죠. 철학과에서는 랑시에르가 그리 깊이 다뤄지지 않고, 『불화』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품절 상태이며, 『역사의 이름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고요. 그럼에도 랑시에르가 다른 현대 철학자들에 비해 여전히 국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저 대문자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 ‘감각적인 것’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선생님께선 랑시에르, 푸코, 아감벤 등 진보 성향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의 저서를 번역해오셨는데요. 앞으로도 계획/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있으실까요? 번역이든 집필이든 재미있는 작업 예고해 주시면 기다리는 독자분들께 좋은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A∥ 2018년 이후 한동안 책을 펴내지 못했습니다. 주경야작의 어려움 탓이었죠. 올해부터는 꾸준히 작업물을 내놓고 싶어요. 랑시에르의 저작 중에는 『미학적 무의식』(현실문화), 『예술의 여행』(현실문화), 『평등의 방법』(두번째테제), 『철학자와 그의 빈자들』(도서출판 길)의 번역을 이미 마쳤고, 지금은 원고를 교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이 책들을 모두 출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 벌써 하반기네요.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양창렬 선생님의 인터뷰 전문을 확인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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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 소식 공유 | 『관계의 수학』 권미애 작가의 감정 워크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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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반을 지나는 한 사람이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찍어온 좌표에서 벗어나, 고유한 좌표를 찍는 여정이 담긴 산문집. 『관계의 수학』을 기반으로 한 감정 워크북이 현재 와디즈에서 펀딩 중입니다.
권미애 작가님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책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감정 워크북을 새롭게 제작하셨다고 하는데요. 감정의 구조화 → 관계의 이해 → 나만의 글쓰기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합니다. 궁금하시다면 ☝️ 위 사진을 클릭해 프로젝트를 확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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