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록 | 흐르는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있다면
🪢돌려가며 읽는 책 | 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편지로 글쓰기』 저자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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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안녕하세요. 길어진 낮과 가벼워진 옷차림. 어느덧 여름의 문턱입니다. 쉬는 날도 많고 날도 좋아 왠지 들뜨는 5월인데요. 구독자분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놀러 갈 때도 책 한 권은 꼭 챙기는 여러분에게 추천하고픈 기대작 소식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붉은 실과 미로,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표지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실이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의 유명 작품들까지 망라하는 책입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편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편지큐레이터' 윤성희 작가님의 저자 인터뷰에는 편지뿐 아니라 '쓰기'에 대한 심도 있는 답변이 담겨 있습니다. 궁리함을 준비하면서 조언 삼을 수 있어 큰 힘이 되었답니다. 저번 편지를 읽고 <날씨의 아이>를 챙겨보았다는 대표님의 답신도 도착했네요. 바로 아래에 준비했으니 저와 함께 읽어보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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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록 (3) │ 흐르는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있다면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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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할 거리를 촉발케 해준 자네 편지 잘 받아 보았네. 두고두고 궁리하면서 앞으로 차차 편지에 요긴하게 반영하면서 써보겠네. 나로서는 깜빡 그냥 지나쳤을 영화, <날씨의 아이>도 챙겨보았지. 아주 몰입할 정도는 아니었네만 빛나는 대목이 여럿 있었지. 그증 <햇빛>에 대한 사유가 퍽 인상적이었네. (다음 편지의 주제는 자동으로 <빛>으로 정했다네!)
나는 자네와 편지를 나누면서 우리를 둘러싼, 내 몸의 신진대사는 물론 지금 당장의 직립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있네. 그건 우리가 공부할 큰 주제인 날씨와 긴밀히 연결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터. 흙, 바람, 나무, 풀, 돌, 물, 빛, 구름 등등. 자네 글을 찬찬히 읽다가 안경을 고쳐 쓰듯 문득 달력을 보면서 이번에는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겠네.
비가 몹시 내리던 날 막 태어난 아이는 함께 오는 비에 얼마나 놀랐겠나. 저만 이 세상으로 나온 줄 알았더니 하늘이 비를 또한 보내셨구나! 할지도 모르는 일. 이런 자각을 하고 어머니 바깥으로 나온 아이 하룻밤 자면서 제가 몸담은 세상의 형편을 살피다가 아침에 깨고 보니, 어느새 맑은 하늘. 갓난아이는 정수리의 천문을 닫기 전까지 피부호흡도 하면서 천지의 기운과 상통하는 중이었지.
그러니 밤새 사납던 그 비 그친 줄 알고 또한 얼마나 놀라고 있겠나. 무릇 세상의 모든 아이들 대지에서 혼자 자라는 게 아니고, 하늘과의 합작으로 문리와 이치를 터득하면서 자라나는 법이네. 이 마른 공중의 밝은 햇살과 상냥한 바람 사이로 천둥과 벼락이 호시탐탐 발호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체험하면서 저만의 고유한 세계를 넓혀 나가는 것.
24절기를 내의처럼 늘 껴입고 지내려 했건만 세수하고 물기 딱은 뒤 던진 타월처럼 또 까먹고 지냈군. 우수(雨水)는 벌써 지나고 곡우(穀雨)를 통과하는 중이니, 이제 곧 입하(立夏)가 코앞이군. 여름이 저기 문 밖에 서서 성큼 들어서려고 준비하고 있다네.
복면한 괴한 같은 아라비아 숫자의 서양력은 한번 가면 그대로 끝인 직선의 표현이다. 다시 올 수 없는 일회적인 나날들이다. 하지만 24절기는 다르지. 그것은 마치 길게 뻗어가는 평면의 꼬리를 슬쩍 비틀어 이어주면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 띠처럼 묘한 시공간이 된다네.
60 갑자로 이루어진 간지도 마찬가지. 한 해를 표시하는 년도를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간지로 바꾸면 의미가 전혀 달라지지. 내가 태어난 1959년은 기해년인데 약 오 년 전에 한 바퀴가 돌아, 1959년은 영영 없어졌지만 기해년은 다시 왔다네. 나는 운이 좋아, 살아서 내 갑년에 다시 몸을 담그는 행운을 누렸고, 그때 헤어진 기해년은 다시 저기 저 멀리서 멀어지다가 다시 여기로 오려고 터벅터벅 걷고 있겠군. 기해년이야 틀림없이 다시 우리 세상에 오겠지만 그때 거기에 내가 있고 없고는 전적으로 내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 했지만 같은 간지에 몸을 여러 번 담글 수 있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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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가 당도하면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있다고 하셨지요. 찾아보니 이미 지나 내년에 도래할 절기더군요” 하면서 지난 편지에서 자네가 일견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나는 아무 걱정을 아니 하였지. 자네 말마따나 몇 개의 이정표를 거친 뒤 이제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내년의 우수를 만날 테니, 그땐 갑진년의 이 아쉬움을 더한, 더 긴 이야기를 풀어내 보기로 하세.
해마다 꽃 피는 계절로 묘사하는 사월 중순경에 해당하는 곡우는 穀雨. 봄을 마무리하는 절기로서 그야말로 농사철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네. 곡식(穀)에 알맞게 내리는 비(雨)라는 뜻. 여기에 더해 초목이 자라는 산천이나, 곡식이 자라는 들판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에도 이즈음에는 많은 비가 필요하다 하겠네. 우리나라 달력을 보면 슬픈 날들이 촘촘히 징검다리처럼 연결되고 있는 것. 하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위로하듯 비를 보내주는 게 아닐까.
매일 쳇바퀴 돌리듯 하는 하루하루이지만 실은 우리의 나날도 둥근 굴렁쇠를 굴리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전진한다네. 지금 여기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나름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더 큰 도시로 퍽 급한 변동을 겪어냈다고 생각하네. 내가 자주 24절기를 몸에 밀착시키고자 하는 건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뛰놀았던 경험 덕분이기도 하다네.
그렇고 그런 시간에 휘둘려 어느덧 인생의 반고비도 훨씬 지난 나이의 나. 나는 이제 거대한 도시에 포획된 존재로 가련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네. 도시란 내 그림자도 온데 간데 없어지는 곳. 그러다가 우울의 늪이라도 만나는 늦은 오후가 되면 내가 처음으로 시골을 떠나, 시외버스 타고 종일을 달려 부산으로 도착하던 날의 저녁을 생생하게 떠올린다네. 그때 도시를 불 밝히던 네온사인 불빛이 몹시도 휘황해서 호롱불에 익숙하던 촌놈의 시선을 확 사로잡아 버렸지. 그땐 멋모르고 좋아라 날뛰기만 했었지만, 그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요사인 그 불빛 사이의 어둠, 그게 비로소 언듯언듯 보이기 시작한다네. 그건 이제껏 내가 까맣게 모르고 지낸, 두 눈은 물론 안경까지 쓰고도 보지 못했던 공중의 다리, 하늘의 맨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네.
나는 철학적 훈련이 부족하고 그저 만만한 독서에 기웃거리느라 아직도 세상의 깊은 지식을 흡수할 형편은 되지를 못한다네. 그래서 대부분 깜냥을 모르고 내식대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지. 올핸 그래도 비에 대한 생각을 물방울처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렀네. 어쩌면 동시 같기도 한 짧은 글로 마무리하네. 쓸 땐 그래도 좀 ‘스펙타클한 ’ 기분이었다네. 그 기운이 꿍꿍이한테도 고스란히 잘 전해지길 비네.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더위 다스릴 준비 잘 하시길!
“바다에는 고래/육지에는 코끼리가/가장 큰 동물//하늘에는 더 큰 동물이 있다//비//밤마다 비는 발을 슬쩍슬쩍 내보이다가/어느 날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낸다//꼬리만 내보이는 데도/천하에 걸치는/저 길고 긴 엄청난 동물//비는 끝이 보이지 않는/너무나 키 큰 동물이다//식물 같은 동물, 천하의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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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가며 읽는 책│『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
🤔꿍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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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게 펼쳐진 실을 따라가다 보면 시작이 어딘지 이 매듭과 저 매듭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죠. 단어와 문장, 이야기 그러니까 책이 그 실과 같다면 어떨까요? 이해가 잘 안 가실지 모르겠지만 『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원제는 "Follow this thread", 직역하면 "이 실을 따라와" 정도 되겠는데요. 이 실이 거쳐가는 경로가 정말 다양하고 다채롭습니다. 테세우스, 루이스 캐럴, 카프카, 보르헤스, W.G 제발트, 피카소, 스탠리 큐브릭, 기예르모 델 토로… 현기증 나는 구성에 걸맞게 책의 앞뒤, 위아래가 뒤집혀서 책의 물성을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도서이기도 해요. 돌려봐야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여러 독자분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미리 읽어보며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작가님이 있어서 연락드리기도 했는데요.. 추천사 목록에서도 뵈었으면 좋겠네요🙏 6월 초 출간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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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 │ 아침 朝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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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논어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오백 개에서 몇 모자라는 논어의 어록들 중에서 서양인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이런 문장들이 편편마다 별자리처럼 촘촘히 박혀 있어 논어는 논어일 것이다. 논어를 두고 ‘우주의 책’이라는 헌사를 바치는 것도 이런 까닭인가 보다.
아침과 저녁은 무척 서로 가깝다. 다 하루 안의 일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이웃한 동네처럼 나란히 있어 우리가 거기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아침-저녁은 실은 같은 장소이다. 동일한 곳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현상이다. 아침과 무덤이나 사당도 참으로 가깝다. 아침(朝)에 모자나 햇빛가림막(广)처럼 헝겊 하나 휙 걸치면 바로 묘(廟)가 되는 것. |
이 묘(廟)는 묘(墓)하고 다르지만 아주 비슷하다. 墓가 죽은 이를 산에서 기리는 것이라면 廟는 죽은 이를 모시는 사당을 뜻한다. ‘삶-죽음’이 긴 것 같아도 ‘아침-저녁’의 거리 만큼이라는 것을 ‘朝-廟’는 잘 표현해 준다.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이 문장을 통상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고 번역한다. <한글논어>의 역자인 이을호 선생의 번역은 이렇다. “도를 깨치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나는 이 번역이 매우 좋다. 깨친 마당에 아침과 저녁의 구분 따위야 있을 수 있겠는가. 마치 돈오(頓悟)했는데 아직 점수(漸修)할 게 남아있다면 그건 진정한 확철대오(廓徹大悟)가 아닌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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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편지로 글쓰기』 저자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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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목요일의 작가들』에 이어 두 번째로 궁리 독자들과 만나시네요. 근황을 들려주세요!
A. 안녕하세요, 여러분! 편지큐레이터 윤성희입니다. 그동안 저는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고, 다양한 연령층의 분들과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어요. 『목요일의 작가들』 출간 이후에 소도시 친구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녔고요. 파주부터 완도, 진주, 통영까지 전국구를 누비며 다녔네요.
Q. 학교 밖 청소년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신 기록에 이어, 이번에는 본격적인 글쓰기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쓰시게 되었나요?
A. 오래전부터 편지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사람들 마음속에 ‘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지’와 ‘글’을 접목시킨 강의를 시작했어요. 그게 <편지로 글쓰기>였죠.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내용을 책으로 엮어달라는 요청을 하시기도 했고, 책으로 출간하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을 것 같아서 쓰게 됐어요. 한 분이라도 더 쉽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요.
윤성희 작가의 인터뷰 전문을 확인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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