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록 | 하지의 영업
한(漢)글자 아넥도트 | 날 '출出'에 대하여
📙곧 선보일 책 | 유산으로 박제된 어느 편지에 관하여
⛰️ 전시 추천 | 우주의 언어: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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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의 말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를 앞둬서 그런지 이번 레터에는 '하지만'이란 접속사가 유난히 많습니다. '하지만'은 상반되는 사실을 이어주는 매력적인 접속사라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무더운 날씨, 하지만 출판계는 호황! 같은 희소식일 때 특히나 그렇습니다.
여러 업무로 바쁜 요즘이었습니다만 전해드릴 이야기는 여전히 많습니다. '불태우라 했지만 안 태우고 남은 편지'로 엮은 하영휘 작가님의 신작과 『수학과 그림 사이』의 홍채영 작가님이 기획자로 참여한 전시, 그리고 매 통마다 돌아오는 고정 코너까지요.
📘신간 예고
근래 카프카 100주년이라 카프카의 편지들이 화제가 되었죠. 불태우라는 유언을 배신한 이야기까지 매력을 더했는데요. 조선의 양반, 조병덕의 편지도 배신당한 유언의 계보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현실적이고 속이 투명히 보이는 양반의 초상 소개를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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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모름지기 '절기-록'인데 절기에 대한 관심이 격조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망종(芒種)은 이제 막바지, 낮이 가장 길어진다는 하지(夏至)가 곧입니다. 아는 바가 없어 검색해 보니 어떤 기업들은 '하지'를 맞아 깜짝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해요. 감자와 마늘을 수확한다는 기사도 관련도 순 상단에 올라있습니다. 그 외에는 "마약'하지' 않아, 난 약'하지' 않아"(서울시 마약예방 캠페인)와 "인스타∙틱톡 모두 '하지' 마"(축구선수 호날두가 젊은 선수들에게 내린 명령), "의사들은 스스로 악마가 되려 '하지' 말라!"(윤경민 칼럼) 등 부정어로 쓰인 '하지'가 많이 보입니다. 이처럼 '하지'는 딱히 절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에 순간순간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연관 검색어에는 출판계의 바이럴 신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자에 탁견이 있는 대표님께선 전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은 때때로 깨진 항아리이니, 저는 이처럼 흘러가는 대로 말하고 굳이 정성스레 복원할 필요 없다는 속 편한 견해를 고수하고 있었는데요. 최근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왕 할 말이면 깨진 항아리 말고 탐스럽고 우아한 항아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지요.
계기는 서점 미팅입니다. 신간을 소개하러 가서 좋은 분위기에 초도 부수까지 만족스럽게 불러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행여 잠깐이라도 말문이 막히고 미지근한 반응을 느낄 때면 바로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홀로 머리끝부터 사방으로 갈라져 내려앉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의미심장하여 사람의 마음을 홀라당 넘어가게는 그런 말, 이를테면 <대부>에 나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그려보고 꿈꾸는 요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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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오퍼>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그 유명한 <대부>로 영화화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 같은 초대형 히트작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지만 <디 오퍼>는 작가 섭외, 배우 캐스팅, 예산 확보부터 내부 임원진 동의까지 제작자가 겪는 고생을 긴장감 있게 그려냅니다. 영업과 피치의 귀재로 등장하는 제작자 알버트 S. 루디(마일스 텔러)의 활약에 홀려 10편에 이르는 시리즈를 주말 동안 다 보고 말았는데요.. 파라마운트사의 대표를 단 한마디로 사로잡은 피치가 인상적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리고 푸른 이야기."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반려를 고민하던 대표는 그 한마디로 영화 제작에 허락을 내립니다. 물론 각색과 배우들의 열연, 연출의 효과가 십분 반영된 감상이겠지요. 그렇지만 그건 박력 있고 드라마틱한 영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하는 건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영업자 친구도 '말 잘 하는 법', '설득의 기술'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별로 도움 되는 조언은 없다고 하지만요. 마음을 다잡고 미팅 자리에 앉아도 다 안다는 듯한 반응이 가장 어렵다고 해요. 저도 어렵습니다. 결론을 내려버린 상대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출판이란 '세상에 일찍이 생각한 바 있고 생각되고 있는 가장 좋은 생각'을 받드는 것이며,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고 하셨지요. 주말에 안은별 연구자의 글을 읽었는데 마침 '강'에 빗대어 연구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와 대표님의 서신이 떠올랐습니다. 안은별 저자는 흘러가는 강을 그대로 두면 강은 그대로 무심하고, 그건 인간이 강에게 무심하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 같아요.
- "강은 찢을 수 없다. 그러나 조사하고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려 발표한다는 것은 마치 강처럼 찢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지점에서 찢고 그것을 다시 이어 붙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실은 가만히 앉아 도망을 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변호하기도 했으며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찢을 수 없는 것을 찢고 묶을 수 없는 것을 한데 묶어 가면서도 무언가에 대해 가장 적절한 언어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책이 펼쳐져 있을 때, 세계는 완전하고 그것은 손에 붙잡힐 것처럼도 보이지만, 책을 편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안은별,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박솔뫼, 안은별, 이상우 공저) 中
'하지(Hajj)'는 이슬람의 성지순례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난 14일부터 시작하여 180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요. 50도 폭염에 31명이 사망하고 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전해집니다. 하지는 뭔가를 하기보다는 조심해서 하라는 절기인 것 같아요. 책을 펼칠 때와 책을 덮을 때가 있는 것처럼 힘들 때는 그 힘듦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무더운 날씨 외출 삼가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요. <날씨의 아이>를 세 번에 걸쳐 다 보았다고 하셔서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저도 언급하시는 작품들을 앞으로 차근차근 읽어보고 감상 전하겠습니다.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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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글자 아넥도트 │ 날 '출出'에 대하여
李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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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한 글자로 하나의 정부(政府)다. 표의문자인 한자는 대표적인 고립어이다. 문법의 상황에 따라 글자가 바뀌지 않는다. 문장 속에서 위치를 바꾸며 품사를 바꾸며 뜻을 바꾸기는 해도 늘 같은 글자이다. 한 글자로 알아서 뜻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제자리에서 별과 태양, 달은 물론 바람과 벌레를 상대하는 한편 자신의 넓직한 그늘 아래로 사람을 거두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이처럼 한자는 하나의 뜻에 갇히지 않고 여러 뜻을 거느린다. 맥락에 따라 수십 가지 번역으로 가능한 게 한자다. 하나의 패밀리에서 식구들의 얼굴이 대개 닮듯, 하나의 문자는 대개 비슷한 뜻으로 얽히기가 쉽다. 재미있게도 한자에서는 전혀 상반되는 뜻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한다. 가령 난리났다고 할 때의 ‘란(亂)’이란 한자는 ‘어지럽다’는 뜻과 함께 그 어지러움을 ‘다스린다’는 뜻도 가진다. 이런 한자들이 제법 있다. |
‘날 出’도 그런 범주다. ‘일출, 월출, 출생, 출현’처럼 대부분 ‘나오다, 낳다, 태어나다, 나타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입출, 출발’과 같이 ‘나가다, 떠나다’는 뜻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한시에 자주 등장하는 월출은 달이 뜬다,라고 일률적으로 번역할 게 아니다. ‘구름에 달 가듯’처럼 어느 땐 달이 진다,라고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외출했다가 약속장소인 어느 카페로 들어가는 건, 실은 세상의 바깥에 매달린 작은 카페로 나가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산에 가면 어느 등산모임에서 내건 리본이 휘날리는 건 흔한 풍경이다. 어느 날 깎아지른 바위로 유명한 강원도 삼척의 덕항산에 갔다가 몹시 힘들게 내려오는 중이었다. 하마나 등산로 출구가 나오나 싶어 목을 빼는데 멀리서 리본이 나부끼고, 가까이 갈수록 出자로 보이지 않겠는가. 문자가 주는 힘은 대단해서 그것으로 이제 다 왔나 싶어 큰 힘이 솟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山, 山, 山을 3층처럼 쌓아 적은 것. 그게 겹쳐서 나는 내 마음의 모양대로 出出로 읽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좋았다. 산의 이곳은 어느 세계로 나가는 출구이기도 한 것. 마치 해리포터가 런던역의 9와 3/4 벽을 뚫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나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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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선보일 책│ 남기지 말랬는데 남겨서 유산으로 박제된 어느 편지에 관하여
🦆더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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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들고 있는 책은 하영휘 작가의 『1,700통의 편지로 읽는 조선 양반의 속내(가제)』입니다. 예전에 펴내 화제가 되었던 『양반의 사생활』 의 개정판입니다. 초판이 나온 2008년 당시 조선시대 개인이 쓴 서간문으로서는 최대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무려 1,700여 통! 편지를 쓴 주인공은 조선 후기 노론 계열의 유학자 ‘조병덕’인데요. 시문집 『숙재집』으로 잘 알려진 조병덕은 본래 권세를 누리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대부터 쭉 급제하지 못해 몰락한 신세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편지를 읽을수록 이 양반도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짐작합니다. 생계유지의 막막함, 자식농사에 대한 한탄 등 체통과 명분 때문에 어디 가서 말 못 하던 부분이 다 담겨 있어요. 수신인은 주로 둘째 아들 ‘조장희’입니다. (거의 6일에 한 번꼴로 보냈다네요..) 조병덕은 행여라도 남들 눈에 띌까, 편지를 받는 즉시 태우거나 빌빌 꼬아 끈으로 만들라는 당부를 덧붙입니다. 하지만 효심 그득한(?) 조장희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고, 편지들을 고이 간직했지요. 그 결과,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더불어 양반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아주 귀한 자료를 만났습니다.
편지들이 처음 발견된 건 ‘아단문고’라는 고문서연구소에 있던 박스 안이었습니다. 고문서의 대가이자 초서(흘려 쓴 서체) 해독의 권위자인 하영휘 작가가 뒤죽박죽 쌓여 있던 자료를 선별하여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150여 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몰락한 양반의 편지는 그렇게 책으로 묶였고, 15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 세상의 빛을 보려고 합니다.
참, 편지 속에 “작금의 독서종자가 끊겼다”는 한탄도 있는데, 유학자가 보기에 그때도 책을 읽지 않는 세태였나 봅니다. 이 유구한 역사를 조금의 위안(?)으로 삼으며, 이 편지들을 소개할 준비를 해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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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그림 사이』에서 예술 속 수학, 수학 속 예술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쉽고 재미나게 들려준 미술사학자 홍채영 선생님께서 광주에서 흥미로운 전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8월 15일까지 미술과 수의 특별한 마주침을 가득 담은 전시가 열린다고 하는데요, 홍채영 선생님께서 이 특별전의 기획자로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전시명은 〈우주의 언어: 수〉! 수학이 어떻게 미술과 연결되어 있는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고 하니, 여름밤 우주와 수학, 그림을 꿈꾸고 싶은 분들께서는 다음 전시 정보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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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함 제8통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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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출판 kungree@kungree.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25-12 (10881) 031-955-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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